달오름극장은 시장한 켠에 빙 둘러앉아 보는 정도의 규모로 개인적으로는 마당놀이 보기에 알맞은 장소인듯싶다.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공연에 몰입도를 높인다.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길굿으로 등장한 배우들은 올 한해 잘 지내게 해달라는 고사를 진행했는데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어르신들이 고삿 돈을 들고 나와 돼지 콧구멍에 지폐를 말아 꽂고 절하시는 걸 보니 우리 안에 살아있는 문화가 다시 한번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고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이야기꾼, 꼭두쇠는 '이춘풍'이야기로 놀아보자 말을 꺼내자 여자 단원들에게 미투 열풍으로 세상이 뒤집어질 판에 바람쟁이 이야기를 하냐고 꾸짖는다. 꼭두쇠는 이에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이춘풍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지 않겠느냐 말하며 진짜 '춘풍이 온다' 이야기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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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게 태어난 아들, 이춘풍은 홀로 남은 어미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제 이름 춘풍(春風)처럼 지나가는 젊음이 아까울세라 사고만 치고 다닌다. 흥청망청 놀고 즐기느라 가세가 기우는 줄도 모르고 써버리자 몸종인 오목이는 굴하지 않고 굳은 심지로 집안을 다시 되돌려놓는다. 다시 입에 풀칠할 만하자 옛 버릇 못 고치고 '이춘풍'은 다시는 방탕하게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약속도 뒤로한 채 호사가들과 평양으로 떠난다. 춘풍이 앞에 모습을 드러낸 평양 기생 '초월'은 춘풍이의 돈을 탐내 유혹한다. 초월이의 연기가 너무 간드러져 보는 내내 웃음이 나오는데 녀석도 뭔 상황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웃어댄다. 아직도 내 귀엔 "밤이면 밤마다~ 꿈이면 꿈마다~", "오금이~~~" 계속 떠올라 킥킥 웃음이 난다. 이춘풍은 초월이의 유혹에 다짐장의 약속을 저버리고 초월이의 치마폭에 가진 돈을 탕진하고 돌아갈 면목이 없어 종노릇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오목은 호기롭게 남편을 구하고 이춘풍을 새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극 내용에서 김씨 부인과 오목이가 이춘풍을 끝까지 용서하고 돕는 것에 구시대적이다 생각은 했지만 젊은 감각을 살려 랩을 하고 인증샷을 찍고 증거물로 아이패드와 USB를 보이는 등 옛 마당놀이 특성답게 사회 이슈나 새로운 소품들로 대중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 고리타분한 잔상은 남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뻔해도 교훈적인 내용을 담는 작품들이 있어야 흐트러진 마음도 정비하지 않겠나, 아들 녀석도 봐야 하니 말이다. ^^

마당놀이는 이야기꾼의 입장단과 배우들의 즉흥적인 몸짓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참여로 만들어지는 공연 형태이다. 녀석은 이해 못 하는 옛말들이 많아 정확히 들을 순 없었지만 "얼씨구~~" 이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며 상모 돌리고 장단 소리에 맞춰 부른 노랫소리까지 2시간을 잘 즐긴 것 같다. '이춘풍'의 인생을 통해 얻은 교훈은 단순히 '돈을 흥청망청 쓰지 말자'였지만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랜만에 자글자글 꽹과리 소리를 들어 신이 절로 났고 베테랑 배우들의 소리와 연주에 귀호강 제대로 했다. 잠시 머물다가는 '춘풍'이라지만 사라짐에 애달프지 말고 우리 삶이 괴롭고 힘들더라고 어김없이 '춘풍'은 오기 마련이니 오목이처럼 굳세고 힘내서 올 한 해도 잘 살아보자~ (어디선가 이 말을 들은 꼭두쇠가 내게 나타나 "얼씨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