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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봄날에 꾸는 꿈
 


봄입니다.
봄엔 참 볼게 많지요(그래서 '봄'인가?). 어서 집을 나서 나비처럼 기웃기웃 개울로 들판으로 산으로, 봄볕아래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개울가엔 갯버들이 노란 수술을 터뜨리고, 갯둑엔 냉이랑 쑥도 나왔겠지요. 개나리 꽃길을 따라 들로 나가면 노란 민들레나 보랏빛 제비꽃을 만날지도 모르지요. 제비꽃을 보면 정말 조그만 새가 땅에 내려앉은 것 같지요. 제비꽃은 또 다른 이름을 몇 개나 갖고 있던대요. 이 꽃이 필 때 오랑캐들이 쳐들어오곤 했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꽃 모양이 꼭 씨름할 때의 자세 같다고 해서 '씨름꽃' 또는 '장수꽃'으로 부르는가 하면, 갓 알에서 깬 병아리같이 귀엽다고 해서 '병아리꽃', 아이들이 반지를 만들어 끼는 꽃이라고 해서 '반지꽃', 키가 작아선지 아니면 뿌리에서 바로 잎을 내고 거기 잇닿아 꽃을 피워선지 '앉은뱅이꽃' 이라고도 부른다니, 이렇게 이름을 여러 개 가진 꽃이 또 뭐가 있을까요. 조금 더 있으면 노란 애기똥풀이랑 꽃다지, 불그름한 코딱지꽃이랑 "뒷동산의 할미꽃은 /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 하는 전래동요가 생각나는 할미꽃도 필테지요. 산 아래 동네엔 살구꽃, 복사꽃도 필거구요. 옛말에 큰아기들이 달빛 아래서 복숭아를 먹으면 예뻐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게 아마 복숭아 벌레 마음쓰지 말고, 큼직큼직 베어먹으란 얘기지요. 그 애가 분이었나 순이었나, 과수원집 아이도 이젠 나이깨나 들었겠지. 그 때의 자기만한 예쁜 딸도 한 서넛 낳아 키우고 있을지 몰라.(복사꽃 얘기하다 별 생각이 다 드네요.)

우리나라 꽃들은 이름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지요. 언젠가 어떤 아이에게 보낸 편지에 꽃이름만 한가득 써넣은 적이 있는데 내 마음이 얼마나 환해지던지요. 몇 개 적어볼 테니까 마음 어두울 때 천천히 소리내서 읽어보세요.

은방울꽃.각시붓꽃.노랑매미꽃.장다리꽃.모과꽃.수수꽃다리.얼레지.냉이꽃.씀바귀꽃.쇠별꽃. 달맞이꽃.해바라기.땅나리.하늘나리.바람꽃.나팔꽃.봉숭아.술패랭이꽃.찔레꽃.함박꽃.도라지 꽃.분꽃.질경이꽃.초롱꽃.고들빼기.까마중.소루쟁이.꽈리.깽깽이풀.개망초꽃.개불알꽃.개쑥 부쟁이꽃.딱지꽃.토끼풀꽃.달개비꽃.맨드라미.큰두루미꽃.분홍바늘꽃

보리밭엔 종다리가 나올 때가 되었지요. 마을 어귀 미루나무 꼭대기에선 까치들이 들락날락 둥지를 손질하고 있을거구요. 이런 노래가 있어요.

파란 보리밭 물결이 보이고 종달새 소리가 귀에서 맴돌지요? 봄이잖아요. "봄 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고 했는데, 봄풀내기가 되니 쑥버무리도 생각나고 향긋한 달래무침이랑 냉이국도 생각이 납니다.
[농가월령가] 2월편에 "산나물은 이르니 들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 달래김치 냉이국은 입맛을 돋우나니..." 란 구절이 있지요. 네 철 내내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 나물 말고, 어릴 때 먹던 어머니의 손맛 배인 진짜 들나물이 먹고 싶습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음력 정월, 초하루와 보름날 사이에 냉이국을 세 번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는데..... 냉이는 참 신통한 풀이지요. 달이 이울고 차는 걸 다 알고 있다니 말입니다. 들에 난 냉이의 잎은 초하룻날부터 보름날까지 하루에 한 잎씩 돋아나고 다시 그 다음날부터 그믐날까지 하루에 한 잎씩 떨어져나가, 그믐날이면 잎이 다 없어지고 뿌리만 남는답니다. 달이 작은 달에는 냉이의 마지막 한 잎이 그냥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는 않는다니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음력풀'이라고도 하고 '달력풀'이라고도 하는 거겠지요. 김삿갓의 시 [냉이풀]에도 이런 얘기가 나오지요.

'높고 낮은 하늘과 땅의 이치 냉이풀아 너는 이것을 품어 안아서 붉은빛 검은빛 보랏빛 흰빛 주역의 괘를 갖추었구나 냉이풀아 너는 삼백예순 날을 열두 달로 나누고 크고 작음을 고르게 해서는 그 나머지를 윤달로 삼는구나' 보리밭이든 밭둑이든 들판이든,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곳엔 어김없이 이런저런 나물들이 돋아나 있지요. 그리고 밭둑에서 들에서 나물을 캘 무렵이면 나비들이 슬렁슬렁 날아들지요. 노랑나비, 배추흰나비, 범나비라고 부르기도 하는 호랑나비.

전래동요에는 나비노래가 꽤 여러 개 있지요.
'나비야 나비야 / 냉이꽃 줄 낀(줄게) / 이리 오너라'(평남 강서지방),
'나비 나비 범나비 / 배추밭에 흰나비 / 장다리밭에 노랑나비'(충북 진천지방),
'나비 나비 짱짱 / 범나비 짱짱'(충남 서천지방),
'나비야 청산 가자 / 범나비 너도 가자 / 가다가 저물거든 /
꽃에 들어 자고 가자'(경북. 충북지방)

나비는 이름 그대로 '날아다니는 빛'이지요. 다들 나비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도 아이들도 나비처럼 가벼워져 교과서 밖으로, 교실 밖으로, 학교 밖으로, 울타리를 훌쩍 넘어 더 큰 세상도 보고, 봄 햇살과 만나 그만큼 더 아름다워지고, 풀과 나무와 꽃들과 만나 그만큼 더 싱싱해지고, 바람소리 개울물소리와 만나 그만큼 더 맑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시작이 있는 봄, 얼음이 마저 녹고 언 땅이 풀려 시냇물은 거침없이 흐르고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눈뜨는 봄, '좋은 노래'들도 냉이처럼 민들레처럼 배추흰나비처럼 잠에서 깨어 우리 모두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면 참 좋은 봄이 될텐데요. 어디선가 조그맣게 시냇물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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