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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내 전래동요를 새로 다듬고,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녹음하면서 새삼 '우리말'이 참 넉넉하고 아름답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 토박이말이 오만 몇천 낱말도 넘는다는데, 우리가 가진
우리말도 제대로 다 쓰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바깥에서 들어온 말'은 왜 그렇게 마구 써대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런 노래 들어보셨지요.
꼬부랑 할머니가 /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개를 데리고 /
꼬부랑 길로 가다가 꼬부랑 똥이 마려워 / 꼬부랑 나무에 올라가 꼬부랑 똥을 누니 /
꼬부랑 개가 꼬부랑 똥을 먹으니 /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로 /
꼬부랑 개를 때리니 꼬부랑 깽 꼬부랑 깽 / 꼬부랑 깽깽 꼬부랑 깽깽
언젠가 방정환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라고 하셨던 전래동요지요.
영국의 전승동요인 마더 구즈의 노래(Mother Goose's Melody)에도 이와 비슷한 노래가 있긴 하지요.
꼬부랑 아저씨가 살았는데 / 꼬부랑 오솔길을 걷다가 꼬부랑 울타리 층계 옆에서 /
꼬부랑 동전 여섯 개를 주웠어 꼬부랑 쥐를 물고 있는 /
꼬부랑 고양이를 사가지고 꼬부랑 오막살이 집에서 / 함께 행복하게 살았대
이런 노랜데 '꼬부랑 할머니'보다는 맛이 덜하지요.
우리말은 어떤 나라 말로도 그 느낌을 담아내지 못하는 독특한 맛과 울림이 있지요.
<춘향전> 에 나오는 < 새타령 >을 보면 장끼 까투리가 울음 운다. 꺽꺽꾸루룩 울음 운다.
. .저 할미새 이리로 가며 팽당그르르, 저리로 가며 팽당그르르. . .저 머슴새 날아든다. 이리로 가며 붓붓, 저리로
가며 붓붓. . 오르며 딱따그르, 내리며 딱따그르. . . 이런 말도 그렇고 '울울총총 달려들어'나 '휘휘친친 감아쥐고'나
'느짓느짓 곱게 땋아' 같은 말을 어떻게 다른 나라 말로 살려낼 수 있을까요.
붉은 빛깔을 나타내는 우리말 한 가지만 살펴봐도, 붉다 . 불그레하다 . 불그스름하다 . 불그죽죽하다 . 불그뎅뎅하다
. 불그데데하다 . 불그무레하다 . 불긋하다 . 발갛다 . 벌겋다 . 빨갛다 . 발그스름하다 . 발그레하다 . 시뻘겋다.
. .수십 개가 넘지요.
이런 아름다운 말을 가진 땅에 태어나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든다는 게 참 마음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게 뭐지요? 젝스키스 . HOT . 에코 . 베이비복스 . SES . 터보 . 원타임 . 영턱스클럽 . 핑클
. 한스밴드 . 컨츄리꼬꼬 . 업타운. . .
이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우리나라 가수들 이름이구요, 커플 . Dreams Come True
. X . 루비 . Steal Away . Good Night . Love Song . Happy christmas
. P.S. I love you . Please baby don`t cry . 메신저 . To heaven . Missing
you . Don`t cry. . . . 이건 우리나라 가수들이 부른 노래 제목인데 도대체 어떻게 돼가는 거지요?
이런 노래들 속에 있다보면 내 정신이 노래집니다. 하긴 뭐 '배달'이란 순우리말에도 괜히 괄호 치고 倍達이라고 써넣고
'구경', '생각', '재미', '장난' 같은 우리말에도 꼭 한자를 붙여놓는 국어사전만 해도 한 둘 아니지요. 이러다
우리 아이들 '얼간이'나 '얼빠진 놈' 되는 건 아닌지. . . "배달겨레의 얼이 가는 곳에 말과 글이 가고, 말과
글이 가는 곳에 또한 얼이 간다"고 하신 분이 외솔 최현배 선생님이던가요.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에 '도레미송'이란 노래가 나오지요. '가갸거겨'란 노래는 우리 전래동요의
바탕이 되는 음들을 노래 마디마다 첫음-도/레/미/솔/라/솔레/도-으로 해서 만든 노래지요. 또 '망태'를 보면 우리말이
그대로 노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소리내 읽기만 해도 노래가 되지 않아요? '별노래'엔 이 노래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지요.
별 하나 똑 따 / 종지에 담아 솥 안에 옇고 / 열고 닫고 /
달그르륵 별 하나 뚝 따 / 불에 꾸어 툭툭 털어 /
망태에 넣고 별 하나 뚝 따 / 행주로 닦아 망태에 넣어 /
동문에 걸고 별 둘 뚝 따 / 행주로 닦아 망태에 넣어 /
서문에 걸고 별 셋 뚝 따 / 행주로 닦아 망태에 넣어 /
남문에 걸고 별 넷 뚝 따 / 행주로 닦아 망태에 넣어 /
북문에 걸고 꿈이 있고, 재미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지요.
전래동요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말밭'도 이런 말밭이 없지요.
'말 탄 놈도 꺼떡꺼떡 / 소 탄 놈도 꺼떡꺼떡' 하며 대나무로 만든 말을 가랑이 사이에 끼고 말 타는 시늉을 하며
놀기도 하고, '고추먹고 맴맴 / 담배먹고 맴맴 / 앞산도 뺑뺑 / 뒷산도 뺑뺑 / 앞집도 돌고 / 뒷집도 돌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코를 잡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맴을 돌기도 하고, '두꺼빈 집 짓고 / 황샌 물 긷고 / 소가
밟아도 딴딴 / 까치가 밟아도 딴딴' 하고 노래하며 모래밭에서 또닥또닥 두꺼비집을 만들기도 하고, 미역 감다 해가
구름 속에 숨으면 배를 두드리며 '참깨 줄게 볕나라 / 들깨 줄게 볕나라' 나 '해야해야 붉은 해야 / 복죽개(사발
뚜껑)로 물 떠먹고 / 막대 짚고 나오너라' 를 부르며 해를 기다리기도 하고, 맨 앞에 선 동무의 허리를 잡고 눈을
감은 채 '어디까지 왔나 / 아직아직 멀었다 / 어디까지 왔나 / 개울 건너 왔다 / 어디까지 왔나 / 담 밑까지
왔다 / 어디까지 왔나 / 삽짝까지 왔다 / 어디까지 왔나 / 마당까지 왔다 / 어디까지 왔나 / 구들목에 왔다'
를 주고받으며 집까지 더듬더듬 걸어오기도 하고, '엿장수 똥구멍은 찐득찐득 / 기름장수 똥구멍은 매끈매끈 / 두부장수
똥구멍은 뭉실뭉실 / 소금장수 똥구멍은 짭짤짭짤 / 옹기장수 똥구멍은 반질반질' 하는 노래를 동무들과 같이 부르며
동네에 온 엿장수를 놀리기도 하고, 우는 애 옆에 가서 '안동나팔 삘삘 / 서울 나팔 삘삘' 이나 '울던 개 짓던
개 / 검정개가 울더니 / 누렁개가 짖누나' 하고 더 울리기도 하고, 울다가 그친 애한테는 '비 오다가 해 났네'
해대고, '꾸정물은 나가고 / 맬강물(맑은물)은 들어오고'를 부르며 냇가에서 샘을 파기도 하고, 불을 쬐다 연기가
제 쪽으로 오면 '여긴 개똥 / 저긴 찰밥' 하며 손을 휘휘 저어 연기를 쫒고 . . .
또 전래동요엔 동네말(사투리)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노래가 꽤 많지요.
이렇게 좋은 노래가 많고 많은데, 들리는 거라곤 노래 같지 않은 노래들 뿐이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말이 깨끗해지고
노래가 깨끗해져야 세상이 아름다와 질텐데, 어른들은 자꾸 세상을 망가뜨리기만 하고 . . . 방송도 신문도 잡지도
교육도 교과서도 온통 바로 잡아야 할 것 투성이니 . . .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말을 말답게, 노래를 노래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할 씨앗들이, 작은 마음들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요,
'혁명은, 세상을 바꾸는 힘은, 한 가난한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직 희망을 갖고 있어도
되겠지요?. . . 당신이 그 사람 아닌가요, 궂은 잠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줄, 환한 아침을 열어 줄 나팔꽃같은 사람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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