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음악마당 > 백창우의 노래편지
 
  ⊙ 아이들 마음 안에 늘 노래는 들썩거리는데  
 


한 달 넘게 내 작업실 기타 옆에 놓아둔 책 두 권이 있습니다. 그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마음이 환해집니다. 그 책들 속에 아름다운 노래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야 책으로 엮어져 나왔지만, 서른 몇 해 전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던 경북 상주 청리초등학교 한 학급 어린이 예순여덟명이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쓴 시를 모아놓은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이오덕 엮음.보리)와,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학교 가운데 하나라는 전북 임실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 다니는 어린이 열여덟명(전교생)이 지난 한 해 동안 쓴 시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학교야 공차자』(김용택 엮음.보림)가 그것이지요. 여기 실린 아이들의 글을 조그맣게 소리내 읽다 보면 그대로 노래가 됩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마음 안에는 아름다운 노래가 그득한 것을 . . . . .

나는 집에 강깨(가니까) / 동생이 울고 있는데 /
눈 안에 / 동그란 눈물이 / 반짝합니다 / 나는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 2학년 박근임「내 동생」전문

햇빛이 / 꺼먼 구름 속에 들어가니 / 글씨가 삐뚤삐뚤해진다
- 2학년 박선용「햇빛」에서

봄비가 온다 / 봄비가 오면 / 눈도 다 녹고 / 나물도 나고
- 2학년 이경희「봄비」전문

봄아, 봄아, 어서 오마 / 우리도 큰다, 나물도 큰다 /
오늘 학교 오다가 보니 / 강아지가 출렁출렁 뛰어갑니다
- 2학년 성옥자「봄」전문

소 띠끼로 가니(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러 가니) / 모밀꽃이 / 햇빛에 환하다
- 3학년 이득훈「모밀꽃」에서

눈 위에도 눈이 오고 / 막 업히(업혀) 가지고 / 온다
- 3학년 전옥이「눈」에서

봄이 오면 / 감자 심고 앤도마콩(완두콩)도 심고 /
달팽이도 나오고 / 그래 얼마 안 가면 감자꽃도 피고
- 3학년 정정술「봄」에서

봄이 오면 토끼풀 뜯기 / 대래키(바구니) 가지고 한 대래키 뜯어 /
집으로 와서 / 한 호 콤(한움큼)주고 / 저녁 바람(저녁때)에도 주고
- 3학년 정달영「토끼풀 뜯기」전문

어제 아침에도 국수 해 먹고 / 어제 점심때도 국수 해 먹고 / 저녁때도 국수 해 먹었다
- 3학년 권용숙「우리 집」에서

햇빛이 쨍쨍 비치는데 / 복숭아 꽃송이에 흰나비가 /
나풀나풀 춤을 춥니다 / 아지랑이 속에서 / 춤을 춥니다
- 4학년 박금순「복숭아꽃과 나비」전문

산 밑에는 안개가 / 깍 덮었다 / 안개가 산을 덮고 / 나무도 덮었다 /
소나무가 아널아 널하게 / 보인다
- 4학년 정향숙「안개」전문

호박씨 / 껍지로(껍데기로) / 모자 쓰고 / 서 있다
- 4학년 정종수「호박 새싹」전문

이제 한 달만 있으면 / 보리가 누렇게 익고 / 보리 벨 때가 되면 /
우리 집 식구들과 같 이 / 보리를 베고 / 보리 타작을 하겠지 /
아주 바쁜 날은 / 학교도 못 가고 / 집에서 일 을 하겠지
- 4학년 박희복「보리」전문

아마,(어머나) 코스모스가 / 고새 피었다
- 4학년 정화자「코스모스」전문

아이, 복숭아 / 나 하나 / 따 주었으면
- 4학년 유승자「과수원」에서

운동장에마 나오면 / 채송아가 피서(피어서) / 운동장이 환하다
- 4학년 정순조「채송아」전문

소나기가 짜드는데(퍼붓는데) / 아이들 와, 이리저리 / 몰려 든다 /
소나기 / 유리창에 / 창창 / 내리친다
- 4학년 김용구「소낙비」전문

접시꽃이 / 우리 교실 쳐다보고 / 방긋이 웃는다
- 4학년 정점숙「접시꽃」전문 -

나는 어머니가 좋다. 왜 그냐면(왜 그러냐 하면) / 그냥 좋다
- 2학년 서동수「사랑」전문

나는 사과나무밭 달님이라는 / 책을 읽으면 / 참 슬프다.
그래서 / 나는 그 책을 읽으면 / 눈물을 글썽인다 /
그것은 / 그 책을 / 읽어 보면 모두 다 알 거다
- 3학년 박진철「책」전문

오늘 개미가 / 이사를 갔다 / 오늘 잘하면 / 비가 올 것 같다 /
나는 비 오니까 / 준비를 해야지 /
개미는 티브이 / 일기 예보보다 / 확실 할 것이다 / 우리 엄마 말씀이다
- 5학년 윤귀봉「개미」전문

백두산도 한라산도 아닌 내 친구 이름은 / 박진산
- 6학년 이창희「박진산」전문

우리 누나는 / 콜라 하나에 웃고 / 콜라 하나에 / 운다
- 3학년 박진철「콜라」전문

집에서 빈둥빈둥 노니까 심심하다 / "아이고 심심혀 죽겄네(심심해 죽겠네)" /
학교가 그 립다 / "학교야"
- 5학년 박초이「심심한 날」에서

나는 엄마 품이 좋아요 / 엄마 품은 따뜻해요 /
나는 꼭 햇님을(해님을) 안은 것 같아요
- 2학년 서동수「엄마 품」에서

사람들이 / 다들 도시로 / 이사를 가니까 / 촌은 쓸쓸하다 /
그러면 촌은 운다 / 촌아 울 지 마
- 5학년 박초이「쓸쓸한 촌」전문

우리 집에는 / 자두꽃이 폈어요 / 봄은 봄인가봐요
- 3학년 박진철「자두꽃」에서

꽃은 참 예쁘다 / 풀꽃도 예쁘다 / 이 꽃 저 꽃 /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6학년 이창희「꽃」에서

나무 위에 감이 / 빨갛게 익었다 / 햇볕에 그을린 / 내 얼굴처럼
- 6학년 이창희「감」전문

비가 온다 / 둑둑 온다 /갑자기 / 두두둑 온다 /
비가 더 좍좍 온다 / 개가 운다 / 무서 워서
5학년 윤귀봉「비」전문

바람이 불면 / 오동나무가 춤을 춘다 / 바람이 불면 / 온 세상 나무들이 춤을 춘다
- 3학년 최현자「오동나무」전문

까치는 / 날아다니고 있는 사이에 / 똥을 싸고 / 지나간다 /
까치는 알까 / 자신이 / 날 아다니면서 / 똥을 싸는지
- 4학년 최빛나「까치」전문

누가 감히 나를 뭐라 해도 / 나는 나 / 호적을 바꾼다 해도 / 나는 나 /
아무튼간에 / 나 는 나
- 6학년 박진하「나는 나」전문

요 며칠 비가 오는 날이 많았지요. '비가 두두둑 온다'(5학년 윤귀봉)는 말이나 '소나기가 유리창에 창창 내리친다'(4학년 김용구)같은 말은 어른들의 글에서는 좀체로 볼 수 없는 말이지요. 개미가 이사를 가면 비가 온다고 한 어머니 얘기를 떠올리고는, 오늘 개미가 이사를 가는 걸 보니 틀림없이 비가 올 거다, 어머니가 한 얘기니 텔레비젼 일기예보보다 더 확실할 거다, 하고 말하는 아이의 시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낍니다. '강아지가 출렁출렁 뛰어간다'(2학년 성옥자)는 말도, '눈 위에 눈이 막 업혀가지고 온다'(3학년 전옥이)는 말이나 '안개가 쫙 덮여 소나무가 아널아널하게 보인다'(4학년 정향숙)는 표현도 어른들은 쓸 수 없는 말이지요.
아이들의 글에는 어른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세계, 아이들만의 눈과 귀가 있지요.

언젠가 이오덕 선생님이 낸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란 책제목이 생각납니다. 시와 노래의 씨앗을 이렇게 많이 품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꾸 자연과 멀어지고 공부라는 울타리에 갇혀, 도시라는 시멘트벽에 갇혀, 제대로 맘껏 놀아보지도 못하고 시들시들한 어른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서 있는 곰이란 이름을 가진 인디언의 글에 이런 말이 있지요. '우리는 자연에서 멀어진 인간의 마음이 금방 딱딱해지고 만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 부족은 아이들을 늘 자연에 가까이 가도록 해서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운 마음을 갖도록 했다'. 자연보다 더 좋은 학교는 없지요. 시골 아이들의 글이 도시 아이들의 글보다 더 아름답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그 속에 자연이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빛깔(개성)과 여러 가지 가능성(창조력.창의력)이 무시되지 않는 교육, 꼴찌도 일등도 저 나름대로의 꿈을 일궈갈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와야할 텐데요. 어른에게는 문제 하나에 답이 하나일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문제 하나에 답이 여러 개 일 수 있다는 걸 모든 어른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한 이오덕 선생님의 말이나 '사람의 마음이 끝도 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아이들에게 배웠다'고 한 김용택 선생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울이 녀석이 세 살 적에 '아부지, 나, 바람이 있는 데서 자전거 타고 싶어요' 하고 말할 때 벌써 알아봤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시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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