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음악마당 > 백창우의 노래편지
 
  ⊙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지요 ①  
 

「동강 유역 산림 생태계 조사보고서」를 읽으면서 내가 아무르장지뱀이나 용수염풀, 아니면 바보여뀌나 큰도둑놈의 갈고리나 괴불나무로 혹은 더위지기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더라면 내 이름이 어떻든 이름의 감옥에서 멀리 벗어나 삶을 사랑하는 일에 삶이 바쳐졌을 것이다.
무덤에 핀 할미꽃이거나 내가 동굴에서 날개를 펴는 관박쥐라 해도 . . . . .
-최승호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에서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 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 전승민요〈정선아라리〉에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머리에는 '동강'을 담은 사진 몇 장이 붙어 있습니다. 정선 아라리 가락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나, 강에 동동 떠다니는 비오리들이나, 남한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다는 동강할미꽃.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쉬리도 어름치도 살지 않고, 청둥오리도 황조롱이도 떠나고, 초롱꽃도 패랭이꽃도 피지 않는 강과 숲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살아있는 것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는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누구나 그 안에 한 세계를 갖고 있다는데. . . . . .

'동강이 푸르게 흐를 수 없다면 / 우리의 생명 또한 흐를 수 없다 . . .
흐를 수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고 쓴 한 농사꾼의 시를 읽다 노래를 만들었지요. 악보에 나오는 곤충 . 물고기 . 뭍짐승들을 비롯해 여기 모아놓은 꽃 . 풀 . 버섯 . 나물 . 나무 . 새들은 모두 동강 유역에 살고 있는 것들입니다. ①에서 ⑧까지는 악보의 6/8장단에, ⑨에서 ⑫까지는 4/4장단에 어울릴 겁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이들 풀과 꽃과 나무의 내음이 조금은 배어나지 않을까요.

①초롱꽃 각시붓꽃 며느리밥풀꽃 애기메꽃 콩제비꽃 고깔제비꽃 쇠별꽃 개불알꽃 술패랭이꽃 딱지꽃 달맞이꽃 동강할미꽃
②엉겅퀴 개망초 미나리아재비 참나리 애기나리 홀아비꽃대 비비추 노루귀 층층둥글레 산달래 쑥부쟁이 자주꽃방망이
③강아지풀 병아리풀 산토끼풀 돼지풀 용수염풀 쥐오줌풀 수박풀 오이풀 애기똥풀 좁쌀풀 담배풀 누린내풀
④괭이밥 쇠비름 노루오줌 바랭이 뚱딴지 바보여뀌 하늘타리 광대수염 참소리쟁이 제비쑥 도꼬마리 며느리배꼽
⑤곰딸기 뱀딸기 멍석딸기 까마중 개다래 왕머루 종덩굴 쥐방울덩굴 댕댕이덩굴 벌깨덩굴 담쟁이덩굴 청가시덩굴
⑥잣버섯 바늘버섯 콩꼬투리버섯 산느타리 구름버섯 애기방귀버섯 치마버섯 그늘버섯 광대버섯 밀버섯 먼지버섯 뽕나무버섯
⑦활나물 우산나물 짚신나물 장대나물 기름나물 물레나물 장구채 쑥방망이 꼭두서니 개고사리 뱀고사리 거미고사리
⑧도라지 씀바귀 고들빼기 조뱅이 질경이 꽃다지 개갈퀴 사위질빵 황새냉이 미나리 개버무리 큰꽃으아리
⑨소나무 쥐똥나무 개살구나무 오리나무 돌배나무 개옻나무 조팝나무 떡갈나무 때죽나무 산뽕나무 측백나무 층층나무
⑩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화살나무 작살나무 딱총나무 소태나무 비술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은사시나무 산딸나무
⑪멧새 소쩍새 물총새 까막딱다구리 직박구리 어치 청둥오리 왜가리 딱새 때까치 검독수리 ⑫멧비둘기 곤줄박이 오목눈이 흰뺨검둥오리 곤줄박이 노랑할미새 논병아리 쑥새 비오리 황조롱이

달팽이는 '달팽이'란 이름으로 한 삶을 살고, 쇠별꽃은 '쇠별꽃'이란 이름으로 한 삶을 살지요. 소가 싼 똥을 먹기도 하고 공처럼 빚어 굴리기도 하는 쇠똥구리는 '쇠똥구리'란 이름으로 한 삶을 살고, 하루살이는 제 이름처럼 하루밖에 안 되는 짧은 삶을 '하루살이'란 이름으로 살지요. 귀뚤귀뚤 우는 곤충에게는 '귀뚜라미'란 이름이 있고, 따옥따옥 우는 새에게는 '따오기'란 이름이 있고, 지느러미로 물위를 날아다니는 물고기에겐 '날치'란 이름이 있고, 지느러미에 가시가 있어 건들면 톡 쏘는 물고기에겐 '쏘가리'란 이름이 있지요. '미꾸라지'는 제 이름처럼 살갗이 미끌미끌하고, '집게벌레'는 꼬리에 가위처럼 생긴 집게가 있지요. 농약 때문에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물에 사는 곤충가운데 힘도 세고 성질도 사나워 저보다 더 큰것들 한테도 막 덤비는 '물장군'이나, 몸집이 크고 소뿔처럼 힘차게 뻗은 더듬이를 갖고 있는 '장수하늘소'나, 늘 배추밭을 얼씬거리는 '배추흰나비'나, 뒷다리를 잡으면 방아를 찧는 것처럼 몸을 앞뒤로 들썩거리는 '방아깨비'나, 땅 위를 빨빨거리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땅강아지'나, 모두 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있지요. 누가 이런 이름들을 처음 붙여 주었을까요, 누구의 마음이 이 이름들 속에 담겨 있는 걸까요.

가랑비 . 궂은비 . 된비 . 모종비 . 보슬비 . 부슬비 . 소나기 . 억수비 . 여우비 . 이슬비 . 작달비 . 장대비 . 장마비 . 찬비 . 큰비 . 흙비 . . . . . 가부새바람 . 갈바람 . 갈마바람 . 강쇠바람 . 갯바람 . 건들바람 . 고추바람 . 꽁무니바람 . 꽃샘바람 . 구렁목바람 . 높새바람 . 늦바람 . 덕석바람 . 된바람 . 도깽이바람 . 도래바 람 . 도리깨바람 . 돌개바람 . 뒤울이바람 . 뒷바람 . 마파람 . 맞바람 . 먼지바람 . 모래 바람 . 모퉁이바람 . 몽둥이바람 . 방석바람 . 북새바람 . 산들바람 . 살랑바람 . 샛바람 . 서릿바람 . 선들바람 . 소소리바람 . 실바람 . 재넘이바람 . 피죽바람 . 하늬바람 . 황소 바람 . 호드라기바람 . 홍두깨바람 . 회오리바람 . 흘레바람 . . . . .
비에게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게도 이름 하나씩 붙여 준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요.

 

 

 

 

 

 

 

 

 

 

 

 

 

 

 

 

 

 

 

 

 

 

 

 

 

 

 

 

 

 

 

앞으로목록보기 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