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 농사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녀 교육. 그런데 여기 아들과 딸을 보란 듯이 키운 엄마가 있다. 두 아이 모두 ‘과학도’로 길러낸 함향숙 씨가 그 주인공. 남매가 직접 붙여준 ‘친구 같은 엄마’라는 애칭이 잘 어울리는 그는 자녀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착한’ 엄마다.
'과외 한 번 안 하고 아이를 특목고에 보냈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설마’ 하며 곧이듣지 않는다. 하지만 함향숙 씨(46·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두 자녀는 정말 고학년이 될 때까지 학원을 모르고 자랐다. 직장 생활을 접고 아이들 곁을 지킨 엄마의 노력과 정성이 빛을 발한 걸까. 아들 전영우 군(20)은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해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 전공 3학년에 재학 중이고, 딸 지윤 양(17)은 올해 한성과학고에 입학했다.
|
|
|
| “아이가 푹 빠져 있을 때는 방해하지 마세요” |
|
“영우는 남자아이라서 레고 블록이나 프라모델 같은 조립식 완구를 좋아했어요. 활동적이어서 산만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블록이나 장난감으로 움직이는 작품을 완성할 때는 세 시간씩 집중하더라고요. 단골 헌책방에 들락거리며 낱권으로 된 과학 관련 도서와 어린이 과학잡지 과월호를 구해 오는 게 즐거운 일상이었죠.” 처음부터 이과 성향을 보인 영우와 달리 동생 지윤이는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고 논술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문과 기질이 다분했다. 과학 쪽에 한 가지 관심사가 있었다면 식물과 동물 이야기. 특히 즐겨 읽던 <야생초 편지>에 나오는 꽃과 풀은 거의 다 외웠을 정도. “앞 베란다는 지윤이의 꽃밭이었어요. 꽃삽, 분무기, 화분 등 식물 기르는 데 필요한 도구들은 거의 갖추고 있었거든요. 양분을 보충해준다며 부엽토를 사다가 분갈이를 할 때면 흙투성이가 됐지만 한 번도 말리지 않았어요.” 집 안 곳곳에 널어놓은 장난감과 물건을 치우는 건 언제나 작업이 완전히 끝난 후. 남매가 좋아하는 활동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가 ‘인내’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 대목이다.
|
|
|
| 학원 수업량보다 ‘내 것’으로 만드는 복습에 집중 |
|
“늘 거실에 커다란 교자상을 펴놓고 생활했어요. 특히 방학 때는 하루 종일 거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일주일 단위로 계획표를 만들어놓고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문제집도 풀었죠. 정해진 학습량을 채운 다음에는 실컷 놀도록 쉬는 시간을 줬어요. 그래야 다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계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컴퓨터 사용 금지’ 같은 벌칙도 정했지만, 남매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지금도 까다로운 문제를 만나면 몇 시간씩 매달리며 풀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데, 모두 어려서부터 끈기 있게 공부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영우는 중학교 2학년 12월부터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으니까 많이 늦은 편이었죠. 중2 여름방학 때 한성과학고에서 실시한 발명교실에 참여하더니 되든 안 되든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잘 갖춰진 실험실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에요. 아이 등쌀에 못 이겨 입시 설명회에 다녀온 뒤 바로 학원 과학고 준비반에 등록했어요.” 과학고 진학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남은 시간도 짧기에 고민도 많았지만, 선생님까지 나서서 ‘내신이 좋고 본인 의지도 강하니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준 게 큰 힘이 됐다. 지금도 ‘어느 학원에 보냈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함씨는 ‘아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원에서 한 시간 배운 내용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세 시간씩 문제를 풀고 복습한 게 주효했다. 서울과학고 입학 초기에는 국제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쟁쟁한 친구들과 경쟁하느라 많이 힘들어한 것도 사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공부는 해야 하는데 마음이 잡히지 않아 아프다는 말도 자주 했다. 함씨는 아들이 실력 좋은 학생들을 ‘교실 안 과목별 선생님’으로 대하면서부터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공부하면서 짜증을 부릴 때면 늦게 찾아온 사춘기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부딪히지 않고 슬기롭게 잘 넘기려고 애썼어요. 늘 믿어주고 지켜봐주던 남편도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고요.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한 덕분에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
|
|
|
| 모든 과목 잘하길 바라는 건 엄마 욕심 |
|
생명공학에 뜻을 둔 지윤 양은 오빠의 경험을 거울삼아 초등 6학년 때부터 과학고 입시 준비를 서둘렀다. 중학교 과정을 미리 배우기 위해 종합반에 등록, 1년 동안 꾸준히 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는 법. 진도 나가기에 급급한 선행 학습에 가뜩이나 재미없어하던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기말고사 수학 시험을 본 날, 울면서 집에 들어오더라고요. 꼭 껴안아주면서 ‘엄마가 도와줄게.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해보자’고 말했어요.” 수학을 포기한 과학고 도전은 말 그대로 모험. 겨울방학 내내 수학 문제집 한 권과 씨름하느라 진땀을 뺐다. 쉬운 문제 여러 개를 푸는 데 필요한 개념이 모두 들어 있는 어려운 문제들에 집중했다. 힘든 고비를 넘기는 데는 수학을 잘하는 오빠의 도움도 컸다. 함씨는 과학고를 준비하는 엄마들에게 너무 일찍부터 입시 공부를 시작하면 지치기 쉽다며, 필요한 과목들의 점수를 잘 챙기는 것만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지윤이는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게 플러스알파가 됐어요. 물론 내신에는 손해를 좀 봤지만요.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에 주력하면서 전교 석차까지 의식해 모든 과목을 다 잘하길 바라는 건 엄마 욕심이에요.” 아이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것이 바로 부모 역할이란 얘기. 아이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자처한 그의 소신 교육법을 듣자니 문득 남매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