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주로 유아영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승호아빠라고 합니다.
여기서 몇 몇 분이 수학의 철학을 설파하시면서 수학공부를 생활과 놀이를 통해서 하자고 주장하고 계신데 그에 대해 지지를 표하면서 수학공부의 실패 사례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실패 사례의 대상은 다름 아닌 저 올시다.
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소위 한 수학 한다는 학생이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까진요.
고교 2학년때 였습니다. 서울시에서 고등학교 수학 경시 대회를 개최했었지요. 요즘은 경시대회가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그 당시(84년)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전 당시 수학을 대부분의 고교생들이 보던 정석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저는 뒤에 있는 연습문제까지 대부분 풀었습니다. 문제에 익숙하다보니 덕분에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대회에 나가서 거의 두 시간 동안 저는 시험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난생 처음 당하는 충격이었습니다. 황당했었지요. 처음 보는 문제 유형이었고 어떻게 풀어야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전 이름 석자만 쓴 백지 답안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봤습니다.
시험 시간이 다 끝난 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얼굴이 시뻘개진 저는 주위 학생들을 둘러 보았지요. 많은 학생들이 저와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아마 그들도 자기 학교에서는 난다 긴다하는 학생들이었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그 대회에서도 역시 우승자는 있었고 문제를 몇 개씩 푼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이었을 겁니다. 요즘처럼 수학경시대회 모의 문제가 책으로 나오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처음 접하는 문제였을텐데 풀었으니까요.
그 일이 있은 후 전 긴 슬럼프에 빠졌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전 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상을 보고 과연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능력을 우선 기르지 못했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생각의 파라다임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냥 늘 보아왔던 정의된 문제들을 습관적으로 풀어 제낀 거지요. 모든 공부가 다 그렇습니다. 과학은 말 할 것도 없구요. 그냥 교과서에서 그렇다고 하면 별 의심 없이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이 도움이 된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흔히 응용문제 라고 불렀던 것들도(왜 있잖아요.. 시장에 가서 오이를 얼마너치 사고.. 뭘 얼마너치 샀는데.. 어쩌구저쩌구.. 얼마냐? 하는 식의 문제) 사실은 문제 정의는 해 줍니다. 모델링까지 다 해준 다른 문제보다는 고차원이지만 사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문제 정의 능력은 길러주지 않습니다.
영어나 수학이나 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의 역할을 하므로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 보기에 수학이란 것이 사실 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사고 방식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수학의 목표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크나큰 실패를 경험했었기 때문에 전 제 아이에게 어떻게 수학을 선보여야 하나 사실 걱정이 큽니다. '모르는게 약이다' 라고 그냥 학교 교육에 맡기면 맘이야 편할 것 아닙니까?
하여간 이 사건 때문에 그 후로 저는 아이들의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공대에 진학한 후에도 교육 관련 강의도 몇 개 듣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대단한 교훈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여기 게시판에서 토론되는 내용들 상당히 중요하고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곳에 자주 오지도 못하고 뭐 도움 드릴 형편도 못되지만 마음속으로나마 지지한다는 뜻에서 저의 실패 사례를 올려보았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저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많은 부모들께서 노력해주세요.
승호아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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