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문학 안 읽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다양한 책을 자주, 많이 읽어야 하는데 머리로는 해야지 하면서도 몸이 잘 따르지 않아 항상 미루게 된다. 그래도 이번 방학에 아동문학 한 권을 읽었다. 『차이나 책상 귀신』은 단순하면서도 쉽게 넘어가지만 재치있는 작품은 아니다. 간간히 웃을 수 있을만한 요소들을 넣어 놓기는 했지만 정말 재밌어서 웃긴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기는 쪽에 가까웠다. 이 작품은 권타오 작가의 작품으로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중 하나다. 강소천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소천아동문학상은 연간 발표된 아동문학 중에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제6회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 수상작인 『차이나 책상 귀신』은 사회 만연에 뿌리깊게 자리한 '왕따문제'에 '다문화'를 제법 잘 버무려낸 아동문학. 하지만 과연 이 동화가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거나 '감동과 깨우침'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할 듯하다. 최종심에서는 이 작품을 두고 "책상 귀신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다문화와 왕따 문제를 솜씨 있게 그려낸 작품"이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열린 마음으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소통할 것을 효과적으로 알려 준다"고 평한다.
개인적으로 청소년 문학보다는 아동문학을 좋아한다. 읽기 쉬운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이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문학이 바로 아동문학이다. 그것을 하나의 '트렌드'라 부를 수 있다면 아동문학은 트렌드가 바쁘게 반영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아동문학에서 다루기 가장 힘든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왕따'문제다. 매 해, 매 달마다 메스컴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것은 물론 SNS에서도 왕따문제는 쉽게 이슈화된다. 토론 주제로도 많이 나오는 문제이지만 언제나 언급만 될 뿐 효과적인 방법을 도출해내지는 못한 문제다.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왕따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지만 청소년상담전화 헬프콜(1388)과 학교폭력피해자 긴급지원센터(117)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 피해 학생에게 큰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심지어 신고전화를 수신거부로 돌려 놓은 것이 그대로 TV전파를 타고 공개되었던 탓에 문제 제기가 많이 되기도 했었다. 모든 작가들이 한 번씩 다룬 문제들이고, 계속 도전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어째서 '크게 공감할 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을까?
해피엔딩에 대해
아동문학이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듯 싶다. 무조건 희망적이어야 할 필요도, 무조건 훈훈하게 끝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아동문학에서 속된 말로 '잘 먹히는 룰'로 대표되는 것은 바로 가까운 동물의 죽음이다. 가족처럼 생각했든, 원수로 생각했든 얼마간의 기간 동안 동거동락하며 함께 지낸 동물의 죽음(그것이 개이든 고양이이든 상관 없이)은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며 동정심과 함께 죄의식을 일깨워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기성 작가들이 닦아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신인상 작품들을 보면 그래서 안타깝다. 아동문학은 이래야 해, 하는 고정관념과 틀을 깨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 나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동문학을 쓰는 작가들 중 젊은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아이를 가르치는 입장에 놓여 있거나 하는 식으로 항상 아이들과 근접한 거리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말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이 과연 2013년도의 아이들이 맞는지는 의문스럽다. '내 시절의 초등학생들은' 하는 식의 사고가 있기 마련이고, 약간의 미화는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아동문학을 읽다보면 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멘탈이 너무 순수해서, 그 아이들의 행실이 너무 모범적이어서 '요즘도 이런 아이들이 있기나 해?'하는 반감이 불쑥 든다. 어른들이 희망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대의 아이들 같아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차이나 책상 귀신』의 마무리는 미흡하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괴롭히던 주인공 치웅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운동장에 서 있는다는 평화로운 내용이다. 차이나 책상 마왕이 성적을 엉망으로 만들겠다는 둥의 협박을 하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치웅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기에 이르른다는 결말이다. 짱꼴라, 짱꼴라 하고 불리며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는 그런 치웅을 보고 지나치지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치웅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식이다. 권작가에게는 이런 류의 청춘드라마가 참으로 인상 깊었나보다. 2000년대 초반에 시트콤 형식으로 EBS 등에서 방영되던 청춘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던 장면이지 않은가.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창기까지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였는데 그런 식의 마무리가 아직까지 통한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화해가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이며, 어떤 과정의 화해가 훨씬 평화로운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식 화해가 아닌,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의 화해 말이다.
다문화세대를 바라보는 한국의 아이들
더 이상 외따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는 이미 도래해 있다. 모든 것을 국산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산, 베트남산, 태국산 등등 다양한 국가에서 흘러 들어온 물건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Made in China, 중국산이다. 『차이나 책상 귀신』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주인공 치웅의 책상을 제외한 교실의 모든 책상이 중국산이라는 것이다. 치웅의 책상만 국산이라 치웅은 그것을 마음에 들어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치웅의 책상 역시 '국산'이라는 이유로 중국산 책상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단순히 '싫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문화 아이들을 괴롭혀온 치웅을 괴롭히는 것은 차이나 책상 마왕이다. 국산 책상은 치웅에게 왜 자신이 치웅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며 100% 국산인 것은 없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꽤나 인상적이다. 책상 하나도 다양한 국가에서 들어온 부품들의 조합으로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다문화 아이들을 괴롭혔느냐"며 원망한다.
『차이나 책상 귀신』의 주요 키워드는 왕따와 다문화다. 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아마도 다문화. 다문화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학교에도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입학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한국 자녀들의 태도는 과연 어떨까. 예상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다문화주의 상태에 대해 전남대학교 김순임 교수는 "이제는 타국에서 온 이들에게 불쾌감이 아닌 안정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그들과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 들이며 우리 문화를 전파해 서로 융합하고 소통하며 교류하는, 화목한 다문화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http://blog.naver.com/beruell/80143101721) 그런데 아직도 그게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야 그들을 우리 국가적 정서에 '동화'시키고자 했지만 요즘은 '융합'을 주장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과 문제를 떠나 국민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치웅이 어째서 자기 교실에 있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짱꼴라', '베트콩' 등의 별명으로 부르며 "너네 나라로 돌아가!"하는 따위의 언행을 저질렀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로
치웅은 동화 초반에 다문화 아이들을 괴롭히며 왕따를 시키는 '가해자'의 입장으로 비춰졌지만,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리면서 반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비웃음을 사는 '피해자'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공부, 공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요구하며 학년이 올라갈 수록 하나라도 더 많은 학원을 다니라며 학원을 등록하지만 결국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의 사회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소소히 불기 시작한다. 소녀시대를 닮은 짝꿍에게 잘 보이려던 치웅이 책상 하나 때문에 비웃음을 사고, 물감통을 짝꿍에게 쏟아버리고, 의자에 앉지 못해 바닥에 나뒹구는 바보같은 짓을 하게 되면서 반 아이들의 비웃음을 산다. 아이들은 치웅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냉랭하게 대하지만 치웅은 그런 아이들의 태도에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오히려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예전 영광을 찾으려 아둥바둥 할 뿐이다. 하지만 정말 치웅이 처음부터 '가해자'였는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치웅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무술을 잘 하며 "친구 하나 없는 네가 불쌍해서 괴롭힘을 당해줬다."고 한 대목에서 치웅의 위치가 의심스러워 진다.
아이들만큼 잔인한 존재는 없다. 가장 순수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친구들에게조차 잔인한 짓을 서슴치않을 수 있는 것 역시 아이들이다. 사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그게 '잘못된 일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런 행동들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치웅은 자신이 반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거나 비웃음을 사고 있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것이 아니다. 『차이나 책상 귀신』에서 책상 마왕이 치웅에게 무시무시하게 굴어서 자신의 잘못을 뼈져리게 뉘우친 것도 아니다. 치웅은 자신이 짱꼴라라고 놀린 중국 아이를 찾아가 그 아이가 '일부러' 괴롭힘을 당해줬다고 시인하는 대목에서 왕따의 무서움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술을 잘 하는 아이가 그동안 왜 자신이 괴롭혀도 가만히 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을 품은 상태로 찾아갔던 친구네 집. 단지 네가 불쌍해서 자신까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동안 괴롭힘을 당해준 것 뿐이었다는 말에 치웅은 자신의 처지를 그제서야 자각한 것이다. 반 아이들이 모두 싫어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아이마저도 자신을 무시했더라면 자신이 어떤 처지가 되었겠는지 치웅은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일부러 당해주지 않았다면' 왕따는 애초에 자신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치웅의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아동문학'이라는 게 어린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녹여 그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이야기로 풀어 쓴 문학인지 아이들의 세계를 주의깊게 관찰해 문학적으로 가공해 써낸 문학인지 모르겠다. 아마 요즘의 아동문학은 전자에 속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아동문학이라고 하면 현재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내되 대상 연령보다 살짝 높은 수준으로 작품을 써서 보다 넓은 시선으로 앞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적으로 그려 낼 필요는 없지만 사회적 문제를 녹여내는 데에 급급해 요즘 아이들의 행동 패턴이나 말투, 생각 등에 소홀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부모와 위원회에 좋은 점수를 얻을 만한 문학이 아닌, 어린이들이 즐겁게 읽고 크게 공감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보다 넓게 생각할 수 있는 아동문학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소천아동문학상은 현재 8회까지 진행되었으며 역대 수상작으로는 『나를 찾아줘』, 『이단 옆차기』, 『모자 쓴 고양이 따로』, 『베컴머리 힙합 선생님』, 『실험용 너구리 깨끄미』, 『차이나 책상 귀신』, 『우리 가족을 도운 도둑』, 『뒷간 지키는 아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청소년 문학보다는 아동문학을 좋아한다. 읽기 쉬운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이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문학이 바로 아동문학이다. 그것을 하나의 '트렌드'라 부를 수 있다면 아동문학은 트렌드가 바쁘게 반영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아동문학에서 다루기 가장 힘든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왕따'문제다. 매 해, 매 달마다 메스컴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것은 물론 SNS에서도 왕따문제는 쉽게 이슈화된다. 토론 주제로도 많이 나오는 문제이지만 언제나 언급만 될 뿐 효과적인 방법을 도출해내지는 못한 문제다.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왕따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지만 청소년상담전화 헬프콜(1388)과 학교폭력피해자 긴급지원센터(117)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 피해 학생에게 큰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심지어 신고전화를 수신거부로 돌려 놓은 것이 그대로 TV전파를 타고 공개되었던 탓에 문제 제기가 많이 되기도 했었다. 모든 작가들이 한 번씩 다룬 문제들이고, 계속 도전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어째서 '크게 공감할 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을까?
해피엔딩에 대해
아동문학이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듯 싶다. 무조건 희망적이어야 할 필요도, 무조건 훈훈하게 끝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아동문학에서 속된 말로 '잘 먹히는 룰'로 대표되는 것은 바로 가까운 동물의 죽음이다. 가족처럼 생각했든, 원수로 생각했든 얼마간의 기간 동안 동거동락하며 함께 지낸 동물의 죽음(그것이 개이든 고양이이든 상관 없이)은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며 동정심과 함께 죄의식을 일깨워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기성 작가들이 닦아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신인상 작품들을 보면 그래서 안타깝다. 아동문학은 이래야 해, 하는 고정관념과 틀을 깨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 나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동문학을 쓰는 작가들 중 젊은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아이를 가르치는 입장에 놓여 있거나 하는 식으로 항상 아이들과 근접한 거리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말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이 과연 2013년도의 아이들이 맞는지는 의문스럽다. '내 시절의 초등학생들은' 하는 식의 사고가 있기 마련이고, 약간의 미화는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아동문학을 읽다보면 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멘탈이 너무 순수해서, 그 아이들의 행실이 너무 모범적이어서 '요즘도 이런 아이들이 있기나 해?'하는 반감이 불쑥 든다. 어른들이 희망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대의 아이들 같아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차이나 책상 귀신』의 마무리는 미흡하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괴롭히던 주인공 치웅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운동장에 서 있는다는 평화로운 내용이다. 차이나 책상 마왕이 성적을 엉망으로 만들겠다는 둥의 협박을 하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치웅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기에 이르른다는 결말이다. 짱꼴라, 짱꼴라 하고 불리며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는 그런 치웅을 보고 지나치지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치웅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식이다. 권작가에게는 이런 류의 청춘드라마가 참으로 인상 깊었나보다. 2000년대 초반에 시트콤 형식으로 EBS 등에서 방영되던 청춘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던 장면이지 않은가.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창기까지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였는데 그런 식의 마무리가 아직까지 통한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화해가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이며, 어떤 과정의 화해가 훨씬 평화로운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식 화해가 아닌,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의 화해 말이다.
다문화세대를 바라보는 한국의 아이들
더 이상 외따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는 이미 도래해 있다. 모든 것을 국산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산, 베트남산, 태국산 등등 다양한 국가에서 흘러 들어온 물건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Made in China, 중국산이다. 『차이나 책상 귀신』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주인공 치웅의 책상을 제외한 교실의 모든 책상이 중국산이라는 것이다. 치웅의 책상만 국산이라 치웅은 그것을 마음에 들어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치웅의 책상 역시 '국산'이라는 이유로 중국산 책상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단순히 '싫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문화 아이들을 괴롭혀온 치웅을 괴롭히는 것은 차이나 책상 마왕이다. 국산 책상은 치웅에게 왜 자신이 치웅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며 100% 국산인 것은 없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꽤나 인상적이다. 책상 하나도 다양한 국가에서 들어온 부품들의 조합으로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다문화 아이들을 괴롭혔느냐"며 원망한다.
『차이나 책상 귀신』의 주요 키워드는 왕따와 다문화다. 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아마도 다문화. 다문화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학교에도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입학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한국 자녀들의 태도는 과연 어떨까. 예상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다문화주의 상태에 대해 전남대학교 김순임 교수는 "이제는 타국에서 온 이들에게 불쾌감이 아닌 안정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그들과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 들이며 우리 문화를 전파해 서로 융합하고 소통하며 교류하는, 화목한 다문화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http://blog.naver.com/beruell/80143101721) 그런데 아직도 그게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야 그들을 우리 국가적 정서에 '동화'시키고자 했지만 요즘은 '융합'을 주장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과 문제를 떠나 국민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치웅이 어째서 자기 교실에 있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짱꼴라', '베트콩' 등의 별명으로 부르며 "너네 나라로 돌아가!"하는 따위의 언행을 저질렀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로
치웅은 동화 초반에 다문화 아이들을 괴롭히며 왕따를 시키는 '가해자'의 입장으로 비춰졌지만,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리면서 반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비웃음을 사는 '피해자'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공부, 공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요구하며 학년이 올라갈 수록 하나라도 더 많은 학원을 다니라며 학원을 등록하지만 결국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의 사회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소소히 불기 시작한다. 소녀시대를 닮은 짝꿍에게 잘 보이려던 치웅이 책상 하나 때문에 비웃음을 사고, 물감통을 짝꿍에게 쏟아버리고, 의자에 앉지 못해 바닥에 나뒹구는 바보같은 짓을 하게 되면서 반 아이들의 비웃음을 산다. 아이들은 치웅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냉랭하게 대하지만 치웅은 그런 아이들의 태도에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오히려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예전 영광을 찾으려 아둥바둥 할 뿐이다. 하지만 정말 치웅이 처음부터 '가해자'였는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치웅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무술을 잘 하며 "친구 하나 없는 네가 불쌍해서 괴롭힘을 당해줬다."고 한 대목에서 치웅의 위치가 의심스러워 진다.
아이들만큼 잔인한 존재는 없다. 가장 순수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친구들에게조차 잔인한 짓을 서슴치않을 수 있는 것 역시 아이들이다. 사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그게 '잘못된 일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런 행동들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치웅은 자신이 반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거나 비웃음을 사고 있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것이 아니다. 『차이나 책상 귀신』에서 책상 마왕이 치웅에게 무시무시하게 굴어서 자신의 잘못을 뼈져리게 뉘우친 것도 아니다. 치웅은 자신이 짱꼴라라고 놀린 중국 아이를 찾아가 그 아이가 '일부러' 괴롭힘을 당해줬다고 시인하는 대목에서 왕따의 무서움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술을 잘 하는 아이가 그동안 왜 자신이 괴롭혀도 가만히 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을 품은 상태로 찾아갔던 친구네 집. 단지 네가 불쌍해서 자신까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동안 괴롭힘을 당해준 것 뿐이었다는 말에 치웅은 자신의 처지를 그제서야 자각한 것이다. 반 아이들이 모두 싫어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아이마저도 자신을 무시했더라면 자신이 어떤 처지가 되었겠는지 치웅은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일부러 당해주지 않았다면' 왕따는 애초에 자신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치웅의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아동문학'이라는 게 어린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녹여 그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이야기로 풀어 쓴 문학인지 아이들의 세계를 주의깊게 관찰해 문학적으로 가공해 써낸 문학인지 모르겠다. 아마 요즘의 아동문학은 전자에 속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아동문학이라고 하면 현재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내되 대상 연령보다 살짝 높은 수준으로 작품을 써서 보다 넓은 시선으로 앞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적으로 그려 낼 필요는 없지만 사회적 문제를 녹여내는 데에 급급해 요즘 아이들의 행동 패턴이나 말투, 생각 등에 소홀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부모와 위원회에 좋은 점수를 얻을 만한 문학이 아닌, 어린이들이 즐겁게 읽고 크게 공감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보다 넓게 생각할 수 있는 아동문학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소천아동문학상은 현재 8회까지 진행되었으며 역대 수상작으로는 『나를 찾아줘』, 『이단 옆차기』, 『모자 쓴 고양이 따로』, 『베컴머리 힙합 선생님』, 『실험용 너구리 깨끄미』, 『차이나 책상 귀신』, 『우리 가족을 도운 도둑』, 『뒷간 지키는 아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