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이니는 글자를 늦게 떼었습니다.
7살에 학교를 보냈는데, 학교 가기 전에 간신히 받침 없는 글자를 대충 읽고,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정도였어요.

아는 분들 말씀이 책 많이 읽어주니 저절로 떼었다고들 하셔서 그런 줄 알고 있다가 사실 많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 때 느낀 점은 "아이마다 다르다"는 점...

어떤 아이는 책을 읽어줄 때 유독 글자에 관심이 많아서, 엄마가 그림을 보여줘도 글씨를 쳐다보고 서로 다른 글씨를 따라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런 아이들은 글씨를 빨리 뗍니다. 어른들이 따로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아도 '글자'를 좋아하고 금세 따라하다가 배우게 되지요.

이런 아이들은 영어든 뭐든 문자 자체를 재미난 장난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굳이 한글 떼기를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잘 하면 영어 알파벳도 술술 하는 경우가 생겨서 엄마에게 좀더 해볼까... 하는 욕심을 갖게 하는 타입의 아이들도 이런 유형의 아이들입니다.
일종의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경우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반면에 그림책을 보여줄 때 정말 열심히 '그림'을 즐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글씨를 봐'라고 해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글씨도 그림처럼 생각하면 되잖아 하는 것은 어른의 생각인 것이고, 아이가 보기에 한글은 정말 특별하지 않은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사실 한글이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매체이기 때문인데요. 한글은 자음이 그나마 다양한 모양이지만, 모음은 아예 점과 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ㅏ 다르고 ㅓ 다르다'가 참으로 모호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차이냐 싶어서 슥 쳐다보고 관심을 안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보다는 공간에 배치된 다양한 그림, 미묘한 색의 차이, 그림 속에 숨은 내용을 찾아보는 재미에 아이들이 쏙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글자를 배우는데 그림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절대 안 통하는 아이들이 바로 이런 아이들인데요.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희 이니의 경우 '공간지각력'이 무척 뛰어납니다. 어려서도 그림의 배치나 순서, 바뀐 그림, 미로찾기를 엄청 좋아하고 잘했는데 글자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수리에 능하고 숫자에 밝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흔히 '수'에 강하고, 수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숫자가 나열되어 있으면 광적으로 환호하며, 수를 적어보고 읽어보고 따라 써보려 하는 아이들! 심지어 숫자가 씌여지지 않은 옷이나 신발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엄마가 숫자 스티커를 사용하여 아이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정말 수를 사랑하는 아이들인데요. 문자와 다른 숫자체계에 관심을 쏟아부으며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을 무척 즐기며 문제를 즐기게 되지요. 이런 경우는 '수 이해력'이 풍부한 아이입니다.

제가 굳이 이렇게 설명을 늘어놓은 이유는, 한글을 빨리 못 뗀다고 아이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다른 능력이 더 클 수 있어서 한글이 아이의 관심 범위에 안 들어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이 성향을 이해한다면 그런 것을 활용해서 한글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을 취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글자를 집중해서 가르칠 때 공간에 관심 많은 저희 이니에게 유용한 것 중 하나는 일종의 '타이포문자'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생활 속에 우연히 발견한 타이포문자들은 때론 벋어 논 신발 짝이 'ㄱ'이나 'ㅅ'이 되기도 하고, 타이어를 보고 'ㅇ'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것과 연결해서 앞에 있던 전봇대와 뒷편 타이어를 연결해서 '이'자라고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그림'처럼. 그래서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자꾸 인지하도록 하는 과정으로 가르쳐서 간신히 '받침 없는 글자만 읽을 수 있게' 했던 것이지요.

학교에 한글을 다 떼지 않고 갈 경우(저희 이니처럼!), 글자를 배우기 위해 사실 1학년 내내 무척 분주하고 초조하고 일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학교 가기 전 해에는 한글을 어느 정도 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글을 다 떼지 못 해서 걱정이라면, 요새 나온 한글 교재 중 엄마가 가르치기 편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잘 된 교재가 꽤 있던데요. 그런 교재를 찾아서 직접 활용해보세요. 내년에 입학을 하건 또는 내후년에 입학하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자녀 성향에 맞춰서 즐기면서 해주시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