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화폐는 고려 아닌 발해시대" |
![]() ![]()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은 고려시대 철로 만든 ‘건원중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 그러나 이보다 전인 발해 시대에도 화폐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발해에서 사용된 동전.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일까? 발해에서 사용한 발해통보(渤海通寶) 북방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서병국 교수는 지난 2006년 발해통보를 공개했다. 5종류의 화폐 뒷면에는 발해의 영토를 의미하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상전(上田), 동전(東田), 남전(南田), 중전(中田), 서전(西田)으로 구분된 다섯 가지의 발해통보를 합쳐보면 발해의 영토를 유추해볼 수 있다. 화폐에 밭 전(田)자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농경지를 뜻하는 땅이라는 뜻 뿐 아니라 사냥의 의미로도 쓰였다는 게 서교수의 주장이다. 뒷면에는 천통팔년(天統捌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천통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만든 연호. 이 화폐는 발해의 건국과 함께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좀 더 나아가면 증거는 남아있지 않지만 발해 이전의 나라였던 고구려에서도 화폐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해통보는 중국의 역사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무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뜻. 그래서 발해통보를 화폐의 기능보다 발해 건국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주화의 성격이 더 강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념주화가 있었다면 당연히 물건을 사고 팔 때 사용된 화폐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발해의 국제 무역 발해에 화폐가 있었다는 데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당시 활발했던 무역 상황을 들 수 있다. 발해에는 거란으로 통하는 거란도, 당나라로 통하는 영주도와 압록도, 일본으로 오갈 수 있는 일본도, 신라로 통하는 신라도가 있었다. 발해의 영토에서는 중앙아시아 상업민족의 은화와 유물, 일본과 거래하던 가죽옷 등이 발견되고 있다. 주변 나라와 무역을 활발하게 유지했다는 증거다. 무역이 활발했다면 발해의 경제도 활발하게 움직였다고 예상할 수 있다. 발해는 이처럼 대외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직접 화폐를 만들어 백성들이 사용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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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맘
경제도 정말 중요하다고 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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