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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 고등학교에서는...

글쓴이 공부하자

등록일 2008-06-19 13:57

조회수 8,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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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보냈느냐가 학교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즘, 꾸준한 인성교육과 자기주도적 학습방법을 통해 한 명의 낙오자도 없는 '신바람 나는 학교'를 만들어 가는 곳이 있다.

지난 2000년 OECD가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 조화된 학교,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는 학교로 평가해 국내 최고의 인문고로 선정한 충남 논산의 대건고등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대건고는 흔한 과외 한 번 받지 않고서도 매년 98%에 이르는 4년제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신흥명문고다. 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시골 구석의 고등학교가 입시 만능의 틀을 벗어던지고 인성과 학력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했더니 오히려 입시에서 성공하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대건고도 처음에는 다른 지방의 중소 도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학교에 대한 인지도나 사회·문화적 여건 모두가 열악한 상황에서 우수한 학생들은 인근 대도시로 빠져나간 뒤 차선으로 선택되는 학교였다. 학습의욕이나 성취도에서도 '그저 그런' 학교였을 뿐이었다.

이런 대건고가 지방 명문고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장인 강석준 신부의 교육철학에 크게 힘입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단순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한다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강 교장의 지론이다. 성적으로 평가받는 학생보다는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 교장은 교사와 교목 신부로 지내며 입시만 있고 교육은 실종된 학교의 현실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교육방법과 내용에 일대'혁신'을 시도했다.

1995년부터 주 5일 수업제로 바꾸고 수준별 수업을 도입했다. 또 매주 토요일은 책가방 없는 날로 정해 동아리 활동·인성교육을 실시했다.

◆ 인간답게 살자

대건고의 인성교육은 액자 속 구호로만 씌여진 일반 학교의 교훈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명상시간'을 비롯해 집단상담, 영상포럼, 예절 교육, 문화체험 등 인성과 관련된 80여 가지의 세부 프로그램이 '수업 아닌 수업'의 형태로 1년 내내 진행된다.



PESS 수첩
특히 올해부터 시작되는 PESS 프로그램은 매우 인상적이다.
'PESS'는 신체적(Physical), 정서적(Emotional), 영성적(Spiritual), 지적(Study)으로 균형잡힌 성장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강 교장신부가 18년간의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고안해낸 인성 교육방식이다.

학생들은 신체적·정서적·영적·학습으로 구분된 'PESS 수첩'에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 매주 금요일 5~6명이 한 조를 이뤄 자신이 목표했던 PESS 생활에 대해 대화를 갖는다. 이때 선생님은 미리 워크샵을 통해 내용을 숙지하고 학생들의 참여도 등을 평가해 이를 각 교과 공통수행평가에 반영한다.

강 교장 신부는 "PESS는 전인적 교육을 통해 미래 지도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 이라며 영성지수인 'SQ'에 주목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영성 지수(SQ)가 교육과 접목되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SQ는 직관의 능력과 판단력을 키움으로써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와 함께 하는 집단 상담시간.
매주 금요일 7~8교시에 이뤄지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한반을 10명씩 3개조로 나눠 학부모 중 희망자 한 분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되는 자아탐색에서부터 나와 우리를 생각게 하는 마인드 맵, 진로 탐색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남과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자신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된다. 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할 수 있는 능력도 덤으로 키워진다.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유익하다"는 강희정(고3 학부모)씨는 자원봉사 3년차 고참. 대자연속에서 자유롭게 사고하면서 부쩍부쩍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즐거움 때문에 상담이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치고 부천에서 한걸음에 달려온다.

이런 인성교육 덕분일까? 이곳에서 '왕따'와 '학교폭력'은 낯선 이야기일 뿐이다.
◆ 스스로 즐기며 공부하자

대건고등학교 모든 교과의 교수학습 활동자료는 교과 담당교사가 파일자료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학생의 필기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토론과 발표, 실험 등 다른 학습시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파일에는 교과와 관련된 충분한 참고자료 목록이 기재되어 있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심화학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수학과 영어과목은 자체적으로 만든 교재를 통한 단계별·수준별 이동식 수업으로 진행된다.
영어과의 경우 기초에서 고급까지 8단계 교재를 만들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1학년의 경우 스텝 1에서 출발해 5주후 통과시험을 통해 다음 단계로 이동하거나 다시 복습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학은 단계별로 4개(기초반, 보통 1·2반, 심화반)로 나눠 자기 수준에 맞는 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듣게 된다.

그러나 대건고의 수준별 학습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밀어주기 위한 '우열반'과는 구별된다.

강 교장이 처음 수준별 이동 수업을 생각해 낸 것도 인성교육의 입장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강제로 시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잔인한 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초반이라고 해서 기죽을 필요도 없고 심화반이라고 우쭐대지도 않아요. 각각의 능력대로 재미있게 공부하면 되죠" 한 손에 파일을 들고 다른 교실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로 학생들을 단 둘로 갈라놓는 기성세대의 이분법적 편협한 논리는 여기에선 통하지 않는다.

◆ 협의로 일구는 학교

"무슨 일이든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의를 거쳐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다."강 교장신부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다.

긴 협의과정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가 모두 부각되고 그 과정에서 해결책까지 도출되기 때문에 일단 시행이 된 다음에는 일반 학교가 겪는 것 같은 부작용과 역기능이 적기 때문이다. 반발이 심했던 단계별 수업도, 학생들에 대한 체벌 금지도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이뤄냈다.

올해 2월 봄방학에는 교사와 학생 대표 간의 '하루 종일 토론대회'를 열었다.
상대방에게 요구할 사항을 내놓고 토론을 거쳐 합의토록 한 것. 학생들은 두발자유화, 수행평가 기준 제시 등을 요구했고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졸지 말 것, 금연 등의 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학생들에게는 5㎝ 스포츠 형 머리가 허용됐고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졸음이 오면 조용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 수업을 하기로 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하고 3월부터 자율규정으로 적용하고 있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함께 계획을 세우고 토론하고 결과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 학생이 중심인 학교

대건고의 연간계획을 보면 선생님들의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집중학습 기간과 휴식기간을 잘 조화시킨 연간계획은 철저히 학생들의 생활리듬을 고려해 운영된다.

3월 개학부터 중간고사기간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중간고사가 끝나면 1학년은 테마여행을, 2·3학년은 체육대회를 실시해 아이들의 머리를 식혀주고 1학기 기말고사 전까지 다시 공부를 하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2박3일간의 신나는 축제마당을 열어 한 학기 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도록 하는 식이다.

흔히 아름다운 계절 운운하며 봄과 가을에 축제를 넣은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축제 준비기간, 종료 후 후유증으로 한 달 이상 학습시간을 손해보게 된다는 것. 얼핏 보면 작은 일 같지만 학생편에서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것이 결국 학교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이다.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지원도 적극적이다. 단 1명의 학생이라도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1인 수상스키 동아리가 운영됐다.

"아이들은 나무를 그릴 때 뿌리, 줄기, 잎의 순서대로만 하는 게 아니다. 잎을 그리고 가지를 그리고 뿌리를 완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나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고 스스로 부딪쳐 실패하고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여유를 허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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