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음절로 이루어진 짧은 일본시를 일컫는 '하이쿠'. 그리고 하이쿠를 비롯하여 많은 아름다운 시를 남긴 17세기 일본의 위대한 시인 '바쇼'. 이 책은 바쇼와 여우를 등장인물로 하고, 바쇼의 대표작을 소재로 하여 창작한, 예술이 살아있는 그림책입니다.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시인 바쇼. 깊은 산 속에서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생활하며, 달콤한 버찌로 늦여름을 만끽하던 그 앞에 어느 날 등장한 것은 다름아닌 여우였습니다. 바쇼가 즐기는 버찌나무에 올라가 마음껏 버찌를 따먹던 여우는 버찌나무에서 물러나라는 바쇼의 말을 듣기는 커녕 처음부터 도도하게 말을 이어가지요. '우리 여우들은 자네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난 시인이지.' 위대한 시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온 바쇼는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멋진 시를 지어오면 버찌를 먹어도 좋다는 말을 하고, 세 번의 기회를 던져 준 여우는 매번 바쇼의 시에 퇴자를 놓고, 여우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시인이 된 바쇼는 두 번의 실패 끝에 마지막 작품에서 여우의 인정을 받게 되는데, 혼자만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커다란 물음과 예술가와 예술의 소통이라는 물음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림책 한가득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느껴지는 겨울의 찬바람, 초봄에 피어난 벚꽃의 눈부신 빛깔, 둥글게 차오른 여름 달밤의 고즈넉함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가슴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
주로 일본의 옛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글을 쓰는 미국 작가 팀 마이어스는 밀듯 당길듯 박자감이 적절히 살아있는 글을 썼으며, 우리나라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한성옥은 동양화의 여백을 살리고, 일본의 사계를 일본 판화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수채화로 표현하여 그림책에 예술적 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저자 팀 마이어스
글쓴이 팀 마이어스(Tim Myers)는 미국의 작가, 작사가이다. 일본에서 삼 년 동안 살았고 일본을 비롯한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을 비롯하여 일본의 옛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여러 작품을 썼다. 지금은 뉴욕 플래츠버그에서 부인과 세 아이와 살고 있다. 마이어스는 "위대한 조상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려고 하지 마라. 그들이 추구하던 것을 찾아라."라는 바쇼의 충고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
그림 한성옥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F.I.T.와 School of Visual Art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였다. 미국에서 출간한 그림책 『시인과 여우』『황부자와 황금 돼지』는 미국 초등학교 교재로 선정되었다. 『시인과 여우』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 이르마·제임스 블랙 상 명예상,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뉴욕 일러스트레이터 협회상, 한국어린이도서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행복한 우리 가족』『나의 사직동』『수염 할아버지』『우렁 각시』『시인과 요술 조약돌』『아주 특별한 요리책』, 『기분이 좋아요』 등이 있다.
번역 김서정
중앙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독일 뮌헨 대학에서 공부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으며, 현재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아동문학을 가르치면서 동화작가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평론집 『어린이 문학 만세』, 『멋진 판타지』, 『동화가 재미있는 이유』, 동화책 『나의 사직동』 들이 있고, 옮긴 책으로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 『용의 아이들』, 『일 주일 내내 토요일』, 『미오 나의 미오』, 『로테와 루이제』,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들이 있다.
이르마 제임스 블랙상 명예상 수상
스미스소니언 우수도서 (Smithsonian Notable Book for Children)
PBS 교사용 추천도서 (PBS Teacher Source Recommended Book)
2000년 뉴욕타임즈 북 리뷰 베스트셀러
이 책은 단순히 바쇼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이며, 어린이에게 예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심상치 않은
질문을 던진다. 다소 코믹한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시인과 여우의 대결은 다름 아닌 예술가와 독자의 대결이다. 위대한 시인이라는 명성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자기가 감동 받지 못한 작품은 인정할 수 없다는 여우는 매우 현대적인 예술관과 미학에 기반을 두고 독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이르마 제임스 블랙상’을 받았다는 사실. 이 상은 유명한 어린이책 작가 겸 편집자인 이르마와 제임스 블랙을 기념하여 Bank Street College of Education이 주최하는 상으로 최종적으로 어린이들이 뽑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전문가들이 후보가 될 서른다섯 작품을 고르고, 주최 대학의 부설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5주 동안 작품들을 읽고 토의한 뒤에 네 편을 골라 상을 준다. ‘예술’이라는 소재가 어린이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다는 것,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책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좋은 보기이다.
또 하나 이 책의 특징은 시각적으로 매우 다채로운 시점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감 있는 구도와 움직이는 시점은 일차적으로 화면의 단조로움을 피
하고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또한 독자에게 사물을 고정된 한 자리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관찰할 것을 제안한다. 예술의 본질을 ‘공감’에 둔 이 책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리는 설정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