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德業相勸(덕업상권)하고, 덕업으로 서로 권하고,
【德】 瓴 - 총15획 큰 덕 瓴(자축거릴 척=두인변): 처음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본 뜬 글자입니다. 【業】木- 총 13획 업 업 木(나무 목): 나무의 줄기에 가지와 뿌리를 본뜬 글자입니다. 【相】目 - 총 9획 서로 상 目(눈 목): 사람의 눈의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勸】力- 총 20획 권할 권 力(힘 력): 힘을 준 팔에 근육이 불거진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이야기.
제6대 단종(端宗)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 사릉(思陵)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 산65 사 적 : 제 209 호
思陵의 특징: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 1440-1521)의 사릉(思陵)은 한 많은 비운의 왕비 송씨의 불우한 일생을 대변하듯이 다소 초라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단종의 장릉이 멀리 강원도 영월에 위치해 있지만 사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승하 당시(중종 16년) 부인의 신분으로 강등되어 궁궐에서 쫓겨난 상태이었기에 부인의 묘로 초라하게 조성되었다가 숙종 24년(1698년) 단종 복위와 함께 정순왕후로 추복(追復)되어 단릉(單陵)의 형식으로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역시 추봉된 능이었기에 병풍석(屛風石)과 난간석(欄干石) 없이 봉분만 조성하고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도 한 쌍씩만 주위에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 비공개 능입니다. 여산송씨(礪山宋氏)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인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의 딸로 태어난 정순왕후는 1453년(단종 1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1457년(세조 3년) 사육신(死六臣) 사건으로 부인(夫人)으로 강등되어 열 여덟 어린 나이에 홀로되어 82세(1521년, 중종 16년)로 승하할 때까지 한 많은 일생을 보내야했습니다. 궁궐에서 추방된 후 여막에서 동냥으로 끼니를 이었고, 염색업으로 여생을 보내면서도 세조(世祖)의 도움을 끝까지 거부하는 청빈한 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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