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終是自害(종시자해)로다. 마침내 자신을 해치는 것이로다.
【終】擡- 총 11획 마칠 종 擡(실 사): 치에서 뽑은 실 가닥을 모아 한 묶음의 실타래를 본뜬 글자입니다. 【是】日- 총 9획 이 시 日(날 일): 태양의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自】自-총 6획 스스로 자 自(스스로 자): 사람의 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자신, 스스로'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害】恚-총 10획 해로울 해 恚(집 면): 지붕이 덮어씌워져 있는 집의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이야기.
추존(追尊) 진종(眞宗)과 妃 효순왕후(孝純王后) - 영릉(永陵)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 산15-1 {공순영릉(恭順永陵) 소재} 사 적 : 제 205 호
永陵의 특징 : 영조(英祖)의 장자(長子)이자 정조(正祖)의 친부(親父)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형이었던 추존왕 眞宗(이행; 1719 - 1728)과 비(妃) 효순왕후 조씨(孝純王后趙氏 ; 1715 - 1751)를 모신 능으로, 슬하에 소생 없이 세자로 책봉된지 3년만에 요절한 효장세자(孝章世子)를 세자와 세자빈의 예(禮)로 묘를 조성하였습니다. 그 후에 다음 세자였던 사도세자(思悼世子)마저 폐위되어 죽음을 당하고 사도세자의 아들을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할 때, 영조는 왕세손을 효장세자의 양자(養子)로 입적시켰기 때문에, 왕위에 오른 왕세손[정조(正祖)]이 영조의 유지에 따라 효장세자(孝章世子)를 진종(眞宗)으로 추존하고 묘 역시 왕릉으로 승격해서 영릉(永陵)으로 격상됩니다.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조성된 영릉은 세자묘의 예에 따라 이루어졌다가 왕릉으로 추숭(追崇)되었기에 간촐하게 상설(常設)되었습니다. 능원의 구조는 병풍석(屛風石), 난간석(欄干石) 모두 봉분(封墳)에서 생략되었고, 석물(石物)들도 석호(石虎), 석양(石羊) 한 쌍씩이며, 무인석(武人石) 없이 문인석(文人石)만 석마(石馬)를 대동하고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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