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禍福無門(화복무문)하여,
화와 복은 문이 없어, 【禍】示- 총 14획 재화 화 示(보일 시): 하늘에서 '日月星'이 온갖 현상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징조를 보인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福】示- 총 14획 복 복 【無】火- 총12획 없을 무 火(불 화): 불이 세차게 타오르는 모습을 본뜬 글자입니다. 【門】門 -총8획 문 문 門(문 문): 좌우 두 짝으로 이루어진 문의 닫혀진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이야기. 추존(追尊) 장조(莊祖)와 妃 헌경왕후(獻敬王后) - 융릉(隆陵) 소재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1-1 사적: 제 206 호 隆陵의 특징 : 조선조 최고 비극(悲劇)의 세자인 사도세자(思悼世子[장조(莊祖)] - 이선 ; 1735 - 1761)와 비(妃)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 헌경왕후(獻敬王后) ; 1735 - 1815)의 융릉은 처음에 비극의 죽음을 맞은 세자를 양주군(陽州郡)에 장사지내고 수은묘(垂恩墓)로 명명했었는데, 정조(正祖) 즉위 후 영우원(永佑園)으로 추상(推上)하고 1789년에 수원으로 천장(遷葬)하면서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改稱)합니다. 현재의 융릉(隆陵) 추숭(追崇)은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 장조의 직계 4대 후손인 고종(高宗)에 의해 융릉으로 추존된 것이고, 시호(諡號), 묘호(廟號) 역시 영조(英祖)가 내린 사도세자(思悼世子)에서 정조가 추숭한 장헌세자(莊獻世子)로, 그리고 고종(高宗) 대에 추숭된 장종(莊宗), 또 장조(莊祖)로 추상됩니다. 능역(陵域)의 상설(常設)은 현 위치로 천장(遷葬)할 때, 세자묘(世子墓)로 조성됨에도 불구하고 정조(正祖)의 의지에 따라 웅장하고 장엄하고 조성되었습니다. 화문(花紋)을 새긴 병풍석(屛風石), 꽃부리 모양의 봉분인석(封墳引石), 문인석 외에 무인석(武人石)의 추가 설치, 정자각(丁字閣) 앞의 넓은 박석(薄石)의 참도(參道) 등 아주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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