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惟人所召(유인소소)하느니라. 오직 사람이 부르는 대로 오느니라.
【惟】心- 총 11획 오직 유 心(마음 심): 마음의 바탕인 심장을 본뜬 글자입니다. 【人】人-총2획 사람 인 人(사람 인): 사람이 다리를 내딛고 서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所】戶- 총 8획 바 소 戶(지게 호): 여닫는 외 문짝을 본뜬 글자입니다. 【召】口- 총 5획 부를 소 口(입 구):사람의 입 모양을 본 뜬 글자입니다.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이야기.
제22대 정조(正祖)와 비(妃) 효의왕후(孝懿王后) - 건릉(健陵) 소재지 :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1-1 {隆健陵 소재} 사 적 : 제 206 호
健陵의 특징 : 正祖(이성 ; 1752 - 1800, 재위 24년, 본래 시호(諡號)가 정종(正宗)이었으나 고종대[광무3년, 1899년]에 정조(正祖)로 추존됨)와 비(妃)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金氏 ; 1753 - 1821)의 건릉은 본래 정조(正祖) 승하 후 친부(親父)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현릉원(顯陵園; 후에 장조(莊祖) 융릉(隆陵)으로 개칭) 동쪽에 안장(安葬)되고자 했던 유언에 따랐으나 풍수학(風水學)으로 나쁘다고 해서 천장(遷葬)의 논의가 있던 차에 효의왕후(孝懿王后)가 승하[순조 21년]하자 현재의 위치인 융릉(隆陵) 서쪽으로 이장(移葬)하고 함께 합장(合葬)을 하게 됩니다. 능제(陵制)는 봉분(封墳)에 병풍석(屛風石)은 없이 난간석(欄干石)만 돌리고 상석(床石) 하나에 8각의 장명등(長明燈)과 망주석(望柱石)을 설치하였으며 문무인석(文武人石)과 수석(獸石: 석호(石虎),석양(石羊),석마(石馬))들은 왕릉(王陵)의 예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특히 정자각(丁字閣) 앞의 참도(參道)가 넓게 박석(薄石)으로 깔려있는 모습은 정조(正祖)의 업적을 느끼게 하는 웅장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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