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敬受此書(경수차서)하라. 공경히 이 책을 받아라.
【敬】挍- 총 13획 공경할 경 挍(=挌 칠 복) 글자 아래 부분의 손(又)과 위의 나무가지(卜)가 결합하여 치거나 때린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受】又- 총 8획 받을 수 又(오른 우): 오른손에 손가락까지 간략화해서 본뜬 글자입니다. 【此】止- 총 6획 이 차 止(그칠 지): 사람의 한쪽 발이나 발자국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書】日- 총 10획 글 서 日(날 일): 태양의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이야기. 추존 익종(翼宗)[문조(文祖)]와 비(妃) 신정왕후(神貞王后) - 수릉(綏陵)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 {東九陵 소재} 사 적 : 제 193 호
綏陵의 특징 : 순조(純祖)의 아들이자 헌종(憲宗)의 아버지인 추존왕(追尊王) 翼宗(이영 : 1809 - 1830)과 비 신정왕후 조씨(神貞王后趙氏 : 1808 - 1890)의 수릉은 몇 차례 능지(陵地)가 옮겨지다가 현 동구릉(東九陵) 경내(境內)로 자리잡습니다. 세자(世子) 때 승하{헌종 즉위 후 익종으로 추존}한 익종(翼宗)은 20대 경종(景宗)과 계비(繼妃) 선의왕후(宣懿王后)를 모신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의릉(懿陵) 옆에 자리잡았는데, 헌종 12년[1846년]에 길지(吉地)로 옮기자는 논의에 따라 양주군(陽州郡) 용마산(龍馬山) 기슭으로 천장(遷葬)합니다. 그 후 철종(哲宗) 6년[1855년]에 현 위치인 태조(太祖)의 건원릉(健元陵) 옆으로 다시 천장을 하면서 동구릉의 마지막 아홉 번째 능이 되었고, 이로 인해 東九陵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게 됩니다. 문조(文祖)라는 시호로 많이 불리는 것은 대한제국 성립 후 1899년에 황제(皇帝)로 추존(追尊)되면서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라 칭한 것에 연유합니다. 22세의 나이로 요절(夭折)한 익종(翼宗)과는 달리 83세의 장수(長壽)와 권력의 정상에 있었던 신정왕후(神貞王后)는 고종(高宗) 27년에 승하해 수릉(綏陵)에 합장(合葬)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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