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쿨

왕릉(王陵) 이야기-26대

글쓴이 운영자

등록일 2017-08-24 10:30

조회수 1,659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이야기.

제26대 고종(高宗)과 황후(皇后) 명성왕후(明成王后) - 홍릉(洪陵)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洪裕陵 소재 사 적 : 제 207 호

洪陵의 특징: 조선의 제26대 국왕(國王)이자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초대 황제(皇帝)이기도 했던 고종(이재황(李載晃) : 1852-1919, 재위 44년)과 황후(皇后)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 1851-1895)의 홍릉(洪陵)은 같은 능역(陵域)에 있는 고종의 아들 순종(純宗)과 황후(皇后), 계후(繼后)를 모신 유릉(裕陵)과 함께 새로운 양식의 능 제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능역 조성은 처음 명성황후가 1895년에 시해(弑害)된 뒤 우여곡절을 겪고 동구릉 내에 숙릉(肅陵)으로 조성했다가, 대한제국 수립과 함께 서울 청량리로 옮겨 홍릉(洪陵)으로 조성합니다. 그 후 1919년에 고종이 승하(昇遐)하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천장(遷葬)해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을 이루게 됩니다.

홍릉의 능제는 유릉(裕陵)과 함께 이전의 조선 왕릉 제도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皇帝)로 승하했기 때문에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떠 황제릉(皇帝陵)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즉, 종래의 능원 앞의 정자각(丁字閣)을 대신해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고 봉분(封墳) 주위에 있던 석인(石人: 문,무인석)과 석수(石獸)들이 아래로 내려와 침전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크기의 석인(石人)이 좌우로 도열해 있는데, 문인석(文人石)이 금관(金冠)을 쓰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고 대체로 조선왕릉 석인(石人)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아래 양쪽의 석수(石獸)들 역시 종래의 석인(石人) 뒤에 석마(石馬)만 세웠던 것과 달리 좌우의 문무인석과 같은 열로 홍살문(紅--門)까지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 두 마리의 순서로 세워놓았습니다. 봉분(封墳)에는 화려한 병풍석(屛風石)을 감싸 장조(莊祖)의 융릉(隆陵)과 같은 연화(蓮花)와 모란무늬를 조각했고 난간석(欄干石)으로 둘레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상석(床石) 앞의 장명등(長明燈)은 사각(四角) 형식은 동일하나, 대석(臺石)이 기존 방식과 다른 변화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릉(洪陵)의 새로운 능제는 조선(朝鮮)이 망한 이후에 조성되어 종래의 왕릉 제도가 발전된 모습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답글 목록

쑥쑥플래닛

  • 상호명:쑥쑥플래닛 주식회사 대표이사:천선아 사업자 등록번호:449-88-02346 통신판매신고:제 2022-서울동작-0348호
  •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30길 40 상도커뮤니티 복합문화센터 206호(상도동, 상도2차두산위브트레지움아파트) 고객지원 ☎ 010-3229-8467 │ [email protected]
  • Copyright (c) 2000-2026 쑥쑥플래닛 주식회사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