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3. 26. 금. 새소리가 한 옥타브 높게 들리는 맑은 아침

1월생이라 학교에 일찍 들어간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나이는 하나 어린데 직장 다니는 엄마 때문에 여러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느라
조금은 더 어른스러운 편인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숙제하는 것을 어려워 하는 것만 빼면요 ^^)

반면 초등 1학년 자녀를 둔 초보 엄마와 할머니가 학부모로 적응하는 것은
또 다른 관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

초보 엄마 학부모 적응기
#1. 준비물도 많고 숙제도 많다

요즘 전 아이 책가방이 깜짝 놀래켜주는 놀이상자(Jack-in-the-box) 같습니다.
매일 밤 아이 가방 속에서 오늘은 또 어떤 주문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게 되니까요.

-> 첫째주가 끝날 무렵 깜짝 준비물...
아이 입학 축하 카드를 꾸며서 가족 사진을 붙여 코팅하여 학교로 보내줄 것!
다행히 토요일과 일요일에 서둘러 했으나 가족 사진이 없어 아이 사진만 붙여 보냈지요.
다른 직장인 엄마는 코팅을 못 해서 며칠 늦어졌다고 합니다.

-> 둘째주가 끝날 무렵 깜짝 준비물...
이런 저런 주문이 많은 복잡한 종이들!
매일 다양한 종류의 주문서가 따라오는데 주말이 되면 더욱 그 양이 늘어납니다.
새학기에 혹시 어머니회 대표가 되겠느냐? 학교에선 이런 걸 한다, 혹시 아이를 위한 보험을 들지는 않겠느냐? 아이 예방접종 중 BCG와 뇌염접종은 어찌 되었냐?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을 할 생각은 있느냐? 학부모 총회가 있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리고 아이 학습한 것을 모아 둘 클리어파일 한 권과 하드보드지 한 장...
만약 주말에도 일을 하여 깜빡 일요일 한밤 중에 이런 준비물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초보엄마는 당연히 깜딱깜딱~ 놀라겠지요...

이 모든 것을 가져간 월요일 아침 어머니께서 등교길에 만난 아이들 몇몇이 하드보드지가 없기에 걱정이 되셔서 아이를 들여보낸 후 다시 문구점에 가셨답니다. 같은 반 아이들 중 그런 준비물 없는 아이들을 위해 넉넉히 다시 사가지고 가서 교문 앞에서 만난 같은 반 아이들 중 하드보드지가 없는 얘들에게 나눠주시고 두서너 장 남은 것은 담임선생님께 드렸답니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에 담임선생님께선 함께 잘 되길 바라는 고마운 마음이라며 학부모 총회날 칭찬해주시더군요. 저도 어머니 마음에 감동 받았지요.

-> 셋째주가 끝날 무렵 깜짝 준비물...
아이 색종이, 가위, 풀, 15cm 자 등을 담을 수 있는 상자를 꾸며 올 것!
화장품 케이스를 찾아서 꾸며야 할텐데... 전 화장품을 케이스째 사본 적이 없어서 집안 구석구석을 이틀 동안 찾았습니다. 가장 만만한 것은 친구가 주었던 노란 상자로 고무줄이 있어 상자를 여밀 수 있지요. 모양이 깔끔하므로 이름표만 달아서 보냈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께서 그걸 다시 가져오셨어요. 다른 아이들 사물함에 있는 것은 모두 장식이 되어 있는데 우리 아이 것만 맹숭맹숭해서 보기 싫다고요. 결국 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어머님께서 멋진 포장용 부직포지를 이용하여 상자를 대변신시켜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역시나... 그런 상자를 마련 못 한 아이가 있을지 모른다면 어머니께서 갖고 계신 화장품 상자를 골라서 포장하여 하나 더 보냈답니다.(안 가져 온 아이가 역시 있었고요)

참, 이번 주 초에는 특기적성 교육이 시작되므로 미술반인 아이의 준비물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수채화물감, 팔레트, 물통, 붓, 스케치북, 크레파스... 그 외에 학급 문고로 책 3권씩을 기증하라고 하셔서 책도 몇 권 보냈습니다.

아이 가방에서 또 어떤 주문이 나올지 매일 밤마다, 매주 토요일마다 흥분하는 초보 엄마들 안 계신가요? 전 이렇게 조금씩 학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 은반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