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공부의 주권을 돌려주자**

학교에서 좋지 않은 결과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아이들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한 고등학생의 인터넷 블로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적표를 받는 순간, 손이 부들부들, 앞이 막막했다.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지? 아빠는 얼마나 화를 내실까? 악, 울고 싶다!”

또 한 중학생 아이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며 성적표를 감쪽같이 조작하는 방법을 간절하게 물었다.

“이거 그대로 들고 가면 엄마한테 맞아 죽어요. 저 좀 살려 주세요!”

많은 아이들이 성적표가 좋지 않게 나오면 먼저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반응이 두렵다. 실망시켜서 죄송하다. 사실 더 실망한 사람은 자신인데, 자신보다도 부모님에게 더 미안하다.

왜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보다 부모에게 더 미안한 걸까. 공부를 못하든 잘하든, 그건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인데, 어째서 부모에게 죄책감을 갖는 걸까.

부모가 기대를 걸고 있고, 또 심적·물질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 주는 만큼 어느 정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여러 차례에 걸친 부모의 기대의 말, 훈계, 협박에 가까운 목표의 강요 등을 통해 천 근 짐처럼 짊어지고 산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어깨에 이런 짐을 짊어지고 공부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공부에 앞서 부모의 무서운 얼굴이 꽉 차 있다.

“잘하지 않으면 날 사랑해 주시지 않을 거야…….”

많은 아이들이 이런 절박한 심리 상태에서 공부를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공부와 성적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공부는 부모를 위해 하는 것이고, 성적 역시 부모를 위한 것이다. 성적이 좋으면 부모가 더 기뻐한다. 나쁘면 부모가 더 화를 내고 속상해한다.

여기서 공부의 주체는 누구인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두려움 밑에서 공부해 온 아이는, 대학에 들어가면 다른 상황을 맞는다. 이제 대학에 붙었으니 더 이상 부모의 잔소리도 없고 실컷 놀 수도 있다. 공부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과연 이런 아이가 세계가 필요로 하는 글로벌 인재로 자랄 수 있을까. 글로벌 인재는 배움과 연구를 멈추지 않는 학습인이자 지식 생산자다. 학습과 지식의 생산은 누가 떠밀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신이 나서 하는 일이다. 쟁쟁한 글로벌 기업에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일하거나,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일을 즐기며 재미있게 한다. 그들에게는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자 지식의 생산인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거나 못하면 부모로서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지금 누가 더 속상하고 힘들겠는가. 현명한 부모라면 화를 내기 전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 정말 속상하겠구나. 괜찮아, 노력해서 다음에 더 잘하면 돼!”

부모가 주어야 하는 것은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또한 ‘공부는 순전히 너의 것이고, 네가 책임지는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설사 아이가 명문대에 합격한 순간이라 해도 부모는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기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 정말 기분 좋겠구나. 축하한다!”

성적이 오르면 옷을 사 준다든지, 용돈을 올려 준다든지, 이런 식의 상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은연중에 “네가 공부를 잘해서 엄마가 기쁘다.”는 표현이 된다. 아이에게 꼭 선물을 주고 싶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공부에 관한 한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아이의 것이다.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주권 의식을 찾아 주자. 공부를 잘하게 하는 힘은 궁극적으로 부모의 기대도 아니고 강요도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공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공부가 재미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한다.

                                                                                    <이젠 세계인으로 키워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