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부담 없어야 생각 자유롭게 표현해요

한국독서철학교육연구소 회원들이 말하는 초등 논술 지도법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자신 없는 엄마들은 가장 먼저 학원을 찾는다. 그러나 학원에만 맡겨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올바른 논술교육법을 연구하는 한국독서철학교육연구소 회원인 이영호, 이인환, 김명기, 김종원씨가 한 자리에 모여 엄마들에게 초등논술 지도법에 대해 조언했다. 이들은 “학원에만 의존하는 글쓰기 교육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영호 소장은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논술하는 ‘기술’을 먼저 배우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등학생들의 논술 교육은 고등학생들의 입시용 논술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쓰기 ‘기술’ 가르치는 학원은 멀리 해야

엄마들이 아이를 논술학원(또는 글쓰기 학원)에 보내는 시점은 언제일까?

김명기씨는 “아이가 일기를 잘 못 쓴다고 생각할 때 학원에 보내는 엄마들이 많다”며 “하지만 학원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기 한 줄 쓰기도 힘들어하던 아이라도 며칠만 학원에 다니면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 제법 그럴듯한 일기를 써낸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일 수도 있다. 아이가 글 쓰는 ‘기술’만을 익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학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 없이 학원에서 가르쳐준 틀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기 쓰기 전에 대화부터

초등학생 글쓰기의 기본은 일기다. 만약 아이가 일기를 잘 쓰지 못하면 무턱대고 학원으로 보내지 말고 먼저 대화를 시도해 보자.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친구랑 싸웠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나중에 화해했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니?”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반성했어요”처럼 글로 쓰기 전에 말로 하도록 유도한다. 그 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일기장에 다시 한 번 써볼까?”라고 권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일기는 물론 자신의 체험을 끌어내 글을 쓰는 방법도 가르칠 수 있다.

논술은 출제자의 의도에 맞춰서 쓰는 글이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가 논술도 잘한다. 그렇지 못한 아이는 출제자의 의도나 주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인환씨는 “평소 대화할 때 아이가 엄마의 말을 주의 깊게 듣도록 가르쳐야 한다”면서 “또 주제와 완전히 빗나간 말을 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쓰기에 부담갖게 하지 마라

이들은 초등논술 교육의 문제점으로 지나친 ‘선행학습’을 꼽는다. 수학 등 다른 과목뿐 아니라 논술에서도 고교생이 배울 내용을 초등학생이 배우는 선행학습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이영호 소장은 “초등학생에게 ‘논술’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 소장은 “초등논술을 대학 입시와 연결 지어 가르치려고 하는 부모들의 욕심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초등학생 때는 글쓰기에 부담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에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강제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독창성도 떨어진다. 논술에서도 주제를 찾지 못하거나 학원에서 배운 대로 판에 박힌 글을 쓰게 된다.

독해력 역시 자기 나이에 맞는 동화작가의 글이나 친구들의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 된다. 논술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고전을 권하지 말아야 한다. 부담 없이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독창성과 창의력도 배경지식이 쌓인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그 중 좋은 글은 뽑아서 베껴 쓰거나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속독’보단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야

요즘 속독을 배우는 아이들이 많다. 수능시험 언어영역의 지문이 길어지면서 “지문을 다 읽지 못해 시험을 망쳤다”는 수험생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속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초등학생들에게 ‘속독’을 먼저 가르쳐서는 안 된다. 속독은 내용의 흐름만 알뿐 그 안에 들어있는 작가의 의도, 등장인물의 심리 등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서 속도는 빨라지기 마련. 성급하게 속독을 가르치기보다 책에 흥미를 갖고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독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먼저 아이가 독서를 ‘의무’나 ‘숙제’로 여기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가 의무로 느껴지면 아이들은 자연히 책에서 멀어진다. 섣불리 지도하기보다 책을 아이 주변에 늘어놓고 아이 스스로 읽게 하는 게 좋다. 어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도록 내버려둔다. 그래야 아이에게 독서가 즐거운 놀이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아이가 읽는 책은 가급적 엄마도 같이 읽어본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면 인터넷 등을 통해 줄거리라도 파악해 둔다. 그리고 아이가 책을 읽은 다음 책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느낀 점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등 결론을 바꾸어 상상해본다. 그런 다음 “이 내용을 글로 한 번 써볼까”하고 권해 아이와 함께 짧은 소설 한 편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