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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발달, 나운규 아리랑을 만나다

글쓴이 별두리

등록일 2014-07-12 13:26

조회수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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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발달, 나운규 아리랑을 만나다

 

- 전설로 남은 한국영화의 풍운아 나운규

​

​

 

 

 

 

한국영화의 발달의 과정속에 나운규라는 인물이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독립운동가중 한명인 줄만 알았는데 한국영화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준 아리랑의 대명작을 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나운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그에 대해 자세하게 읽게 되어

정말 무한 감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은 고학년을 위한 위인전이며, 고학년들에게 인물의 삶을 찬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연 그는 어떤 비범한 아이였을까?

읽기전 부터 벌써 기대되는 아리랑의 원작 나운규이다.

그렇게 나운규 아리랑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아이세움 역사인물 25번으로 영화 아리랑에서 주연, 각본, 각색, 감독 1인 4역을 맡아

영화안에 민요 아리랑을 넣어 온 겨레가 하나로 묶게 만든 역사적 인물로서

초창기 우리나라 영화발달에 초석을 다지신 분이기도 하다.

그런 그는 회령의 작은 도시에서 아이들을 쥐략펴락하는 골목대장이였다.

1902년에 태어난 나형권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교육열에 의해

회령공립 보통학교에 들어가나 제복을 입고 일본인들에게 교육을 받는 현실이 영 마땅치 않았다.

학교생활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그는 늘 2, 3등을 놓치지 않았다. ​

 

 

 

 

 

 

 

 

 

그를 사로잡은 건 소년, 아이들보이라는 잡지책이였다.

틈만 나면 책방으로 달려가 코를 묻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고,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더욱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무단통치시대였다.

그가 하는 일은 녹녹치 않았고, 곧 그가 벌린 연극은 한편의 소동으로 끝나고 말게 된다.

어릴적부터 떡잎을 알아본다고 했을까?

그는 책을 좋아했고, 그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된다.

어린시절 그 사건이후에 숨막히는 학창시절의 감옥에 갖히고 말게 되었다.

​

 

 

 

 

 

 

 

그런 그에게도 첫사랑이 소리없이 찾아왔으니,,,,,

그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진행되는 교회에서 알게된 첫사랑 소녀 덕분에

오히려 더 큰 사건에 휘말리고 결국 간도라는 곳으로 떠나게 되는 이야기에도 시대적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결혼이라는 것도 15세 소년이 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전반적은 배경을 두루 알 수 있는 사진과 글들은 그의 소년시절 1910년대의 뼈아픈 시절을

낱낱이 들쳐내어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했다.

우리 역사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전설로 남은 한국영화의 풍운아의 성장기를 통해

일제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표현해고 있어 생동감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도 젊은 혈기에 많은 동료와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노인 투쟁가가 그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무들이라고 쓰임새가 다 같지는 않네, 저렇게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는 기둥이나 대들보로 쓰이지.

이렇게 구불구불하고 키도 작은 나무는 낫이나 괭이의 자루로 쓰이거나 그도 아니면 땔감으로 쓰이지.

사람도 마찬가지로 제각각 쓰임새가 다른 법이네.>​

 

전쟁할 사람과 공부할 사람이 따로 있다며 젊은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마도

공부를 하여 겨레와 나라를 책임져줄 인재가 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부분이에 있어서

또한번의 나운규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

 

 

 


 

 

이 시대에는 불운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가 그렇게 나라와 겨례를 위해 공부를 하여 훌륭한 인재가 되는 꿈은

다시한번 산산조각이 나고야 만다.

무산령 폭파 미수사건으로 징역 2년을 살게 되어 그 꿈은 잠시 접어두어야만 했다.

 

​골목대장에서 일본인에게 받은 억울한 누명으로 간도로 도망가면서

그는 첫사랑의 아픔도 느꼈고, 나라 잃은 아픔도 절절히 느껴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이 컸다.

독립투사로도 성공하지 못하듯 했고, 공부로도 성공하지 못한 인재인 것 같아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으며

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쇠약해진 집안 살림살이에 아무 희망이 없어보이기도 했다.

​

 

 

 

 

 

 

​​그런 그에게 꿈같은 일이 찾아왔다. 바로 연극인이 되기 위한 것....

그렇게 그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바꾸는 또한번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실패와 좌절을 맛보면서도 그의 뒤에는 커다란 아우라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커다란 에너지가 마구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그는 포기할 줄 모르는 성실과 연습과 노력의 연극인으로서 어느덧 자리잡고 있었다.

​

​가슴뜨거운 장면 소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하나도 아리랑의 탄생 비화이다.

아리랑은 나운규에 의한, 나운규를 위한, 나운규의 영화였다.

이 한편의 영화에 우리 민족의 처한 참혹한 현실과 바람을 모두 담아내어

많은 이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가기 충분했다. ​

나도 그의 감동의 물결에 잠시 가슴 뜨거워짐에 잠시 그 감동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이야.

​

​

​그의 나이 36세에 전설로 남은 한국 영화의 풍운아가 되어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게 된다.

​

​역사인물을 읽어야 한다면 나운규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시대의 비극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역사인물을 통해

인물 나운규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한번 그의 창백한 분장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한국영화의 발달을 이끄는 주인공이 되어 역사에 고해 잠드시어

우리 대한민국 영화에 커다란 주춧돌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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