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6살, 4살 쌍둥이들을 데리고 우리부부는 서점으로 향했다. 늘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 서점은 유일한 해방구 같은 곳이다. 새로 나온 신간과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의 목록을 수첩에 적어 서점에 들르면 막혔던 숨이 확 트일 정도로 기운이나서 물 만난 고기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보면 어느새 반나절을 꼬박 넘길 때도 있다.
그날 내 수첩목록 제일 앞에 있던 책이 바로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다. 우연히 본 TV인터뷰에서 비추어진 한비야씨가 내 가슴속에 진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편한 일상을 걷어차고 온 세계를 일주하며 “바람의 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
그전까지 내게 있어 한비야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보다 훨씬 젊은 나이임에도 아이들과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을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일상에 묻혀 지낸 나와는 달리, 용감하고 거침없이 오지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그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그녀가 그저 부럽기도 했고,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방송에서 그녀가 오지여행가에서 국제 긴급구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내게 다른 각도로 성큼 다가왔다. 바람의 딸보다는 빛의 딸이 되어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내 아이, 내 가족만 챙기면서 살아오며 단 한번도 주위의 어두운 곳을 외면했던 내게, 그녀가 들려주었던 세계 각국의 난민들을 돌보는 이야기들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선뜻 긴급구호요원으로 나서 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녀를 책에서 만나고 싶은 욕심이 강하게 생겼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을 손에 쥐고 단숨에 모두 읽어 내려갔다.
긴급구호요원으로 처음 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더 이상 낭만적인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기근과 사투를 벌이는 나라! 아프리카의 말라위, 잠비아, 어느 곳이든 신변의 위협을 받는 곳이었지만 특히 더욱 더 위험했던 이라크에서의 구호활동...네팔, 팔레스타인,이라크 또 2년 전 재앙을 겪은 남아시아,또 가깝지만 먼 곳인 쌍둥이나라 북한을 오가며 그녀가 세세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녀와 함께 그곳에 가있는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고, 긴박한 상황에서 늘 위협받는 신변의 위협 속에서 따뜻한 손길을 펼치고 있는 그녀의 활약이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기근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에게 아이가 곧 죽을 것같은 두려움에 긴급구호대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현지 돈을 몰래 건네주었던 그녀를 보고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난민을 돕는 것이 형식적인 의무감이었다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라크에서 식수를 공급하는 일을 맡고나서는 단순히 식수대를 놔주는 건설업자가 아니라 물과 함께 사랑도 나누어주는 것이라며 말했던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난민구호활동은 그들에게 준 것은 단순히 빵 한 조각, 옷 한 벌의 물자공급이 아닌 사랑이었던 거다.
전쟁이 위급해져 철수명령이 내려져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평화와 기도를 이라크에 남김없이 두고 떠난다고 했던 그녀의 따뜻한 맘이 내게도 절절하게 전해져왔다.
또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생산된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잔인하게 전쟁이 이는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처참한 행동을 일삼는 소년병들에게 그들또한 전쟁의 피해자로,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말에 동감했다. 전쟁은 그렇게 어린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상하게 한 것이다.
세 명의 어린 난민소녀들을 자신의 딸이라고 서슴없이 자랑하고 감사하게 느끼며 매달 그들에게 기부하는 그녀! 기부하는 돈이 세 딸들과 그 가족들이 살수 있는 디딤돌이 됨을 행복하게 여긴다는 그녀를 보고 며칠 전 동사무소에 갔다가 항상 안내대에 놓여있었는데도 인색하게 한번도 돈을 넣지 않았던 [사랑의 빵] 저금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앞으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내가 보내는 작은 돈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돈이 있을까!
우리나라도 1990년까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왔다.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불과 십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원조가 이어졌었다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수혜국이었던 우리가 지원국이 되어 도울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힘든 긴급구호활동을 계속하는 이유가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하기대문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처음 긴급구호활동의 제의를 받았던 40대 초반에 그녀가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말대로 인생을 80살, 딱 하루라고 쳤을 때, 40대인 자신은 태양이 최고에 떠있는 정오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치자면 아직 마흔이 안 된 나는 이제 막 오전 11시를 넘기지 않았는가!
한국을 베이스켐프삼아 온 세계를 다니며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빛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이 꿈이라던 그녀! 편하게 자신만을 돌보는 안일한 삶을 사는 것 보다는 두 날개를 활짝 펴 지도 밖으로 나가 자유를 느끼고 행군하면서 긴급구호활동을 계속 펼치겠다는 그녀.
이 책을 덮으면서 나 또한 내 자신에게 외쳐본다. 나도 그녀처럼 지도 밖으로 행군하겠다고. 내 아이, 내 가족만을 돌볼줄아는 나만의 작은 지도를 넘어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으로. 비록 그녀처럼 발로 온 세계를 뛰며 돕지는 못하겠지만, 결코 그 동안 외면했던 그들의 간절한 눈길을 전처럼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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