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쿨

| [5월 캠페인] 모랫말 아이들

글쓴이 삼혀제맘

등록일 2007-05-31 23:55

조회수 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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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저녁산책을 했다.

뜨겁던 낮이 지나고 어스름한 저녁엔 바림이 살랑살랑 귀를 간질이는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읽을거리를 찾으러 서점에 들른 그날.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황석영의 책을 읽으려면 심호흡을 한번씩 하고 볼 정도로

편치 않았다. [객지], [장길산], [오래된 정원]등의 그의 소설들이

그랬듯이 과장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너무나도 사실적인 표현들,

또 작가역시 사회, 정치적으로도 고된 삶을 겪었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모랫말 아이들]은 좀 더 편하고 부담스럽게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주저 없이 골라 들었다.


늦은 밤 책을 읽으면서 역시 황석영은 황석영이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삽화까지 아름답게 들어있었지만, 읽는 내내

그저 편한 동화책을 읽어 내려가듯 가볍게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였다.


그의 기억 속에서 유년시절 전쟁직후 겪었던 이야기들을 10살도 채 안된

수남 이의 눈을 통하여 실타래 풀어내듯 한 개씩 감칠 맛나게, 그러나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게 끌어내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부서진 한강변의 집들,  힘들고 고달팠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동네 주민들, 순수하고 호기심 많았던 친구들이 있는 모랫말.


마치 내가 수남이의 친구인 목재소집 정삼이, 염색소집 국원이, 제법 어른스럽던

광국이에게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움막집 거지로 힘들게 얻은 아내와 아이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잃었으면서도

원망보다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돌과 홁을 쌓으면 정성스럽게 만든 춘근이의

꼼베다리.

충격 속에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춘근이의 따뜻하고 깊은

속정을 생각하며 꼼베다리를 건너보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 양공주생활을 했던 어머니를 둔 혼혈아 귀남이가

맡겨질 곳에 없어 신부님께 맡겨진 가엾은 소녀 귀남이.

어린 딸을 버려두고 힘든 그 길을 선택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편치 않았을까!


전쟁에서 파편을 맞고 제대했으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소년과 할아버지를 구한 후

전선줄에 감전되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벌떡 일어났던 상이군인.

그가 옆에 있다면 나 역시 기꺼이 거수경례로 그에게 존경의 인사를 했을 것이다.


고아로 서로 의지하며 사는 곡마단 오누이. 동생과 떨어지는 것이 걱정되어

일부러 공중타기를 돌며 위험스러운 실수를 마다하지 않은 누나와 그 누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던 소년을 보면 가슴한구석이 쓰려왔다.


도깨비를 보러간다고 늦은 밤 화장터로 향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어린시절의

나를 보는 듯 했다.

동네뒷산에 친한 친구들 몇이 모여 밤늦게 귀신 잡으러 갔다가 길을 잃어

나중에 엄마에게 볼기짝을 물씬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나서 웃음이 났다.


공작창 직공을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돌봐주던 식모 태금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미쳐서 나지막이 불러대곤 했던 애달픈 군가소리는 얼마나

구슬펐을까!


이렇게 소외된 주변의 인물들의 삶을 가슴 아프고 힘겹게 보여주는데도 그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리움이 보였다.


그렇게 어렵고 가슴 아팠던 기억들조차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모두 아름답다며

과거의 기억들 모두가 빛나는 설렘으로 다가온다는 작가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맨 뒷장의 삽화를 보면서 입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연위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한 용감한 상이군인, 맨 위에 왼쪽엔

누나와 떨어질 것을 걱정했던 곡마단 소년 같았고, 꼼베다리를 지었던 움마집 거지  춘근이도 얼핏 보였고 씨익 장난스럽고 밝게 웃었던 식모 태금이도 보였다.


이 모든 사람들을 내가 전에 만난적이 있는것처럼 친근하고 반갑게 다가온 건

나 역시 따뜻하고 순수했던 사람들을 벌써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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