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육에서 창의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르게 접근하는 것인가?
첫째, 창의성은 자유롭게 많은 표현기회를 부여한다고 해서 효과적으로 계발되기 보다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교육에 의해 효율적으로 계발된다는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창의성이 천부적인 것이며 간섭이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퍼뜩 떠오르는 것이므로 지도를 통해 일부러 계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미술교육에서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은 창의성을 계발한다는 생각으로 미술 수업을 방임에 가깝게 무조건적으로 표현만 하게 하는 쪽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창의성이 많은 재료로 표현하다보면 저절로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방임 상태에서는 스스로 무력감만 조장할 뿐, 창의성 계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부여하면 무엇을 표현할까 망설이다가 옛날에 그려보았던 익숙한 표현을 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됨에 따라 표현이 도식화되어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린이들이 창의적이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상상력과 경험을 자극하고 단계적으로 목표한 표현에 도달하도록 체계적으로 지도하며 개별적으로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문제를 해소시켜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둘째, 창의성은 백지 상태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전혀 계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험에 대한 평가나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은 추론하는 것을 요구하며 관찰한 것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인간의 창의성을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는 사람들, 즉 창의성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그런 과정은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것이었다.
창의성은 신비라는 가면에 의해서 보호를 받을 때 보존될 수 있고, 가장 잘 계발된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술교육자들은 그동안 창의성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의성은 삶 속에서, 표현 속에서, 작업을 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창의적인 생각과 발견과 표현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경험과 지각, 개념들간의 연합과 연상, 상상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에디슨이 전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전등과 같은 것들을 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또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미술교육에서도 풍부한 발상지도와 충분한 동기부여, 교사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지도 등을 통해 창의성이 효율적으로 계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창의성은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발견, 새로운 형태의 창조 등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되며, 자유롭고 모든 생각을 존중하며 개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미술시간은 자기표현과 토론, 발표를 보장하고, 학생들의 자유롭고 기발한 생각들을 존중하며, 사고와 표현과 토론이 열려있는 공간을 말한다.
미술시간은 어느 교과 시간 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열려 있으며 그런 열려있는 분위기를 통해 학생들의 창의성 계발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들에게 처음부터 무조건적인 자유를 부여하여 모든 선택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어린이들의 창의성이 효율적으로 계발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린이들이 창의성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경험과 상상, 생각 등을 자유롭게 떠올리고 연상하고 결합시킬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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