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에 딸 아이와 같은 환자가 9명이 있었다. 하루 지나면 중환자실로 내려가고 그다음에는 떠나고 또 떠나고…. (그걸 보는) 모든 피해자 부모들은 지옥이었다. 우리 아이도 증상이 (죽은 아이와) 똑같이 따라가니 "그 다음은 우리 아이구나" 싶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임종찬(36) 씨는 사랑하는 아이를 하늘로 떠나보낸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진 간담회에 참석해 아이의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질환으로 같은 달인 2011년 5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임산부였던 아내는 다행히 생명을 건졌지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의 흔적은 남아있는 상태다.
임 씨는 "모든 사람이 가족을 잃고 자식을 잃고 많은 도태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아빠들보다도 피해 엄마들의 정신적 충격은 너무나 크다.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발생한 지 만 2년이 된 최근에서야 피해 사실이 언론에 다시 부각되고 피해 구제에 대한 국회 차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은 변함없이 제자리걸음이다. 정부 부처들이 피해 구제 마련 등에 대해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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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피해가족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만나 간담회를 갖고, 자신과 가족에 대한 피해 현실을 알리고 있다. 정가영 기자 [email protected] ⓒ베이비뉴스 |
이런 상황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피해가족 8명은 자신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알리기 위해 또다시 국회를 찾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환경보건문제인 만큼 국회 환경보건위원회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건의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날 간담회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신계륜 위원장(민주통합당)을 비롯해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이호중 과장,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등이 자리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당시 임산부였던 신지숙(36) 씨는 산소호흡기를 꼽고 휠체어에 앉은 채 힘든 걸음을 했다. 신 씨는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집에서 날 돌봐줄 사람이 없다. 내 병원비를 벌어야 하니까 가족들은 일을 해야 한다"며 "피해자분들 중에 나처럼 엄마 피해자가 있는데, 숨이 차도 엄마이기 때문에 아기를 돌봐야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 거 아니냐. 그분들에게 빨리 도움이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가는 신 씨. 신 씨의 호흡기에 연결된 액정에는 86%라는 숫자가 써 있었다. "몸속에 산소가 86%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신 씨는 폐기능이 정상인의 21%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져 폐이식도 힘든 상황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산소 수치가 내려가고 산소양이 적기 때문에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지낼 수밖에 없다. 신 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이어 신 씨는 "가습기를 틀어놓고 신랑이랑 둘이 잤었는데 요즘에는 신랑 걱정을 한다. 지금은 괜찮지만 같이 방에서 썼으니까 혹시 폐손상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폐CT 등 비용이 걱정되니까 검사해보고 싶어도 비용 앞에서 고민하는 제 자신이 싫다. 피해자구제 대책에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던 가족들이 관련 질병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현재(5월 13일 기준)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의심사례는 사망 127건 등 401건이다. 10대 미만의 피해자는 165명이며, 사망자 중 영아(1~3세) 사망은 56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지난 6일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조사를 재개한다고 밝힌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피해자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가까스로 통과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책 예산 50억 원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추가경정예산 심사에서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최근에서야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접수했다는 피해자 가족인 최승영(42) 씨는 "아내가 죽고 1년간은 당시 4살, 2살이던 아이들과 거의 울면서 지냈다. 죽은 사람은 잊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내의 사진도 다 없앴다"며 "아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임종하던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사는 게 정말 힘들다"고 호소했다.
2006년 3살 된 딸을 잃은 백승목(41) 씨도 "자다가도 "가습기살균제 안 넣었어"하면서 넣었단 말이다. 아이를 보낸 다음 자살기도까지 했다. 이후 어떤 피해소식도 듣고 싶지 않았다"며 잊고 싶은 아픔을 꺼내 놓았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나라에서 책임져야 한다. 민주화된 나라에 살고 있지 않느냐. 히틀러처럼 독가스를 살포해야만 살인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스러워하면 총리,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대책모임은 국회에 건의사항을 전달하며 "이 사건은 사망자만 100명이 넘는 초유의 사건이다. 국민안전과 행복추구를 국정정책의 모토로 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본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복지부, 환경부, 산업부 등 관계부처 포함 총리실 차원의 범정부차원의 대책 마련 ▲중증환자에 대한 긴급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 ▲2014년 정규예산에 구제기금 포함 ▲기업들에 대한 징벌적 처벌조항 담은 환경피해보상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빠르면 6월에 피해의심 사례에 대한 CT검사, 폐기능 검사를 하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 신고를 해야만 가족들도 받을 수 있는 만큼 피해가 의심스러운 가족들은 일단 피해 접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빨리 입장이 정리되고 주무부처가 누구인지, 어떤 업무가 어떻게 처리될 지 결정돼야 법안도 처리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저희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장하나 의원은 "지금 만 2년 간 소관부처를 정하지 않은 게 고의가 아니고 뭐겠냐. 정부가 무슨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벌써 소관부처를 정했을 것"이라며 "이 문제가 여기까지 왔는데도 정부가 손을 안대고 끝까지 우물쭈물하는 건 안 된다"고 전했다.
심상정 의원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결의안이 실질적인 지원을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해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해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국회도 이 문제에 나서야 한다는 게 공식화됐다. 더 이상 뒤로 갈 순 없다"며 "국무총리도 만나고 해서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 행정적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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