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 ‘장마’ 속에 흐르는 6·25 전쟁의 눈물

등록일 2018-08-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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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비극적인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후 언제 다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휴전 국가라는 불안 속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누구도 쉽게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4월, 극적으로 이루어진 남북 정상회담은 이 땅에 다시 평화와 안녕을 불러올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주며 온 국민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이념의 대립이 빚은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윤흥길 작가의 <장마>입니다. 민족이 가진 정서의 동질성을 통해 6·25전쟁이 낳은 비극적인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그려냈지요. 함께 <장마>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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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기사는 초등 잡지 <톡톡> 6월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는 해당 잡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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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아들 둔 외할머니, 빨치산 아들 둔 친할머니

6·25 전쟁이 발발한 후 10살짜리 소년 ‘나’의 외할머니는 사돈댁인 친할머니 댁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때마침 장마가 시작됐고, 한 집에 두 할머니와 나,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살게 됐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에 나갔던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게 됩니다. 이후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나’의 친할머니가 노발대발합니다. 외할머니의 저주는 곧 빨치산에 나가 있는 자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오후도 장대 같은 벼락불이 건지산 날망으로 푹푹 꽂히는 험한 날씨였는데, 마루 끝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별안간 무서운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 마자 다 씰어 가그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

소리를 듣고 식구들이 마루로 몰려들었으나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외할머니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벼락에 맞아 죽어 넘어지는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인다는 듯이 외할머니는 더욱 기가 나서 빨치산이 득실거린다는 건지산에 대고 자꾸 저주를 쏟았다.

“저 늙다리 예펜네가 뒤질라고 환장을 혔댜?”

그러자 안방 문이 우당탕 열리면서 악의를 그득 담은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외할머니를 능히 필적할 만한 인물이 그제까지 집안 한쪽에 도사리고 있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닫고 긴장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 대신 나타난 구렁이 한 마리 

친할머니가 이토록 예민했던 것은 당시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빨치산에 간 친할머니의 아들, 즉 삼촌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친할머니는 아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점쟁이의 예언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이윽고 점쟁이가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 날, 장마 통에도 아들 맞을 준비에 바쁜 할머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실의에 빠진 할머니 앞에 난데없이 구렁이 한 마리가 아이들의 돌팔매질을 피해 집 안으로 기어 들어왔습니다. 구렁이를 본 친할머니는 별안간 졸도해버리고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나서더니 아이들과 외부인을 쫓아내버리고 감나무에 올라간 구렁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구렁이가 반응이 없자 외할머니는 친할머니가 정성껏 차려놓은 음식을 구렁이 앞에 대령하고 친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조금 가져와 불에 그슬렸습니다. 그러자 구렁이는 땅으로 내려왔고, 이윽고 대밭으로 사라졌습니다.
 


커다란 구렁이를 보고도 외할머니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두 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모아 합장했다.

“에구 이 사람아, 집안 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질을 찾어 왔능가?”

 

(중략)

 

외할머니는 도래소반 위에다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차리는 중이었다. 호박전과 고사리나물이 보이고 대접에 그득 담긴 냉수도 있었다. 내가 건네주는 머리카락을 받아 땅에 내려놓은 다음 외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늙은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자네 오면 줄라고 노친께서 여러 날 들여 장만헌 것일세. 먹지는 못헐 망정 눈요구라도 허고 가소. 다아 자네 노친 정성 아닌가. 내가 자네를 쫓을라고 이러는 건 아니네. 그것만은 자네도 알어야 되네. 냄새가 나드라도 너무 섭섭타 생각 말고, 집안 일일랑 아모 걱정 말고 머언 걸음 부데 펜안히 가소.”

이야기를 다 마치고 외할머니는 불씨가 담긴 그릇을 헤집었다. 그 위에 할머니의 흰 머리를 올려놓자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멀리까지 진동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에 놀라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올렸다. 외할머니가 아무리 타일러도 그때까지 움쩍도 하지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티던 그것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나무 가지를 친친 감았던 몸뚱이가 스르르 풀리면서 구렁이는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린 다음 구렁이는 꿈틀꿈틀 기어 외할머니 앞으로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길을 터주었다. 



할머니들의 화해와 함께 지루한 장마가 끝나다

이후 정신을 차린 친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외할머니가 구렁이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후 아버지를 통해 외할머니를 모셔오도록 했는데요. 사랑채에서 쉬고 있던 외할머니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큰 방으로 건너오자 두 할머니는 손을 맞잡고 화해를 합니다. 친할머니는 일주일 후 숨을 거두고, 장마가 걷힙니다.
 


할머니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두 눈에서 하염없이 솟는 눈물방울이 홀쭉한 볼고랑을 타고 베갯잇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할머니는 사돈을 큰방으로 모셔오도록 아버지한테 분부했다. 사랑채에서 쉬고 있던 외할머니가 아버지 뒤를 따라 큰방으로 건너왔다. 외할머니로서는 벌써 오래 전에 할머니하고 한 다래끼 단단히 벌인 이후로 처음 있는 큰방 출입이었다.

“고맙소.”

정기가 꺼진 우묵한 눈을 치켜 간신히 외할머니를 올려다보면서 할머니는 목이 꽉 메었다.

“사분도 별 시런 말씀을 다……”

외할머니도 말끝을 마무르지 못했다.

“야한티서 이애기는 다 들었소. 내가 당혀야 헐 일을 사분이 대신 맡었구랴. 그 험헌 일을 다 치르노라고 얼매나 수고시렀으꼬.”

“인자는 다 지나간 일이닝게 그런 말씀 고만두시고 어서어서 맘이나 잘 추시리기라우.”

“고맙소, 참말로 고맙구랴.”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외할머니가 그 손을 잡았다. 손을 맞잡은 채 두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할머니 쪽에서 먼저 입을 열어 아직도 남아 있는 근심을 털어놓았다.

“탈 없이 잘 가기나 혔는지 몰라라우.”

“염려 마시랑게요. 지금쯤 어디 가서 펜안히 거처험시나 사분댁 터주 노릇을 이 하고 있을 것이요.”

그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대번에 기운이 까라져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까스로 할머니가 잠들기를 기다려 구완을 맡은 고모만을 남기고 모두들 큰방을 물러나왔다.



두 할머니를 통해 드러나는 민족의 안타까움

   
▲ <나침반36.5도> 정기구독
http://www.365com.co.kr

이 소설에서는 두 할머니를 통해 6·25 전쟁의 이념 대립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외할머니는 국군인 아들, 친할머니는 빨치산인 아들을 두고 갈등을 빚게 되는 것이지요. 아들들이 선택한 이념에 대해 할머니들이 자세히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대립하고, 반목하는 모습이 우리 민족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이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할 수 있는 열쇠로 ‘민족적 정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갈등을 푼 열쇠, ‘민족의 정서’
친할머니는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입니다. 또 외할머니 역시 소설의 곳곳에서 자신의 꿈이 예언 능력이 있다고 믿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소설 속에서 사건을 전환시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만든 구렁이 역시 ‘저주받은 사람이 죽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미신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처럼 소설 곳곳에는 우리 전통의 무속 신앙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미신에 머물지 않고 두 할머니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두 할머니는 서로 다른 이념을 선택한 아들들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점쟁이가 예언한 날 찾아온 구렁이를 보고 동일한 믿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친할머니의 아들이 구렁이가 되어 찾아왔다고 생각해 구렁이를 보고 졸도한 것이고,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잘 달래 돌려보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두 할머니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한’을 깨닫고 이해하며,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장마>를 읽어봐야 하는 이유
<장마>는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전쟁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갈등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념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평화가 깨진 이념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평화’이니까요.

우리는 모두 이토록 평화를 원하면서도 지금까지 어떻게 평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설 <장마>는 우리에게 닥친 비극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동적인 화해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평화를 향해 가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조심스레 평화의 희망이 보이는 지금, 윤흥길의 <장마>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플러스+ 

   
 

윤흥길 (1942년 12월 14일~)
70~8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로 등단했습니다.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성격이 짙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비판과 전망을 제시하는 작품들도 다수 창작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에미> 등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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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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